은행을 보며 디톡스를 하자.

100일의 글쓰기 - 49번째

by 천세곡

나에게 은행은 그렇게 맛있는 간식은 아니었다. 특유의 향과 맛은 조금 역하기도 했다. 그나마 프라이팬에 구워 먹으면 좀 나았다. 솔직히 말하면, 짭조름한 소금 맛에 먹었다.


입맛에 맞지도 않은 은행을 굳이 번거롭게 볶아 먹은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들은 말 때문이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누군가 내게 말해주었다. 은행이 엄청 몸에 좋다고.


단지 그 말을 듣고, 은행을 억지로라도 챙겨 먹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건강을 위해 그 말을 믿으려 했던 것 같다. 결코 내 입맛에 맞지 않는 특유의 쌉싸름한 맛이 흡사 약처럼 느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은행을 먹을 때마다 들었던 경고도 한몫했다. 반드시 대여섯 알만 먹어야 한다는 주의사항은 내가 먹는 은행알이 단순히 콩과 같은 음식이 아니라 약이구나 하는 생각을 더 부추기기에 충분했다. 맛있지 않아서 아마 더 먹을 일은 없었겠지만, 먹을 때마다 그 말을 들으니 정말 더 먹었다간 큰일 날 것 같았다.


그럼에도 항상 궁금하기는 했는데 내가 조금 자라고 나서야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은행 안에는 독성 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소량을 먹으면 상관이 없는데 너무 많이 섭취할 경우 구토, 설사, 복통 심지어 호흡곤란까지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사실상 은행을 먹을 수 있는 생명체는 지구상에서 인간을 제외하고는 전무하다. 어느 동물도 심지어 벌레조차 은행을 먹지 못한다. 은행 안에 포함된 독성 덕분에 은행나무는 수많은 세월을 살아남을 수 있었다.


문제는 이 독성이 은행나무 스스로에게도 독이 되었다는 데 있다. 우리가 은행 열매로 알고 있는 것은 사실 종자이다. 동물이 은행을 섭취해 이곳저곳에 퍼뜨려야 지속적인 번식이 가능한데 독성 때문에 먹지 못하니 번식하는데 큰 제약이 생겨버렸다.


은행나무가 아직 우리 주변에 많이 보이기에 흔한 것 같지만, 실은 멸종 위기종이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내는 독성이 되려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인간의 곁에서 반려나무로써 살아가는 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었다.


은행과 같은 독성은 우리 내면에도 있을 수 있다. 무심코 다른 사람에게 내뱉는 말속에 독이 들어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상처받기 싫어서 방어적으로 했던 말인데 상대방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원하는 것을 말한다는 핑계로 자신 안에 가득 차 있던 화를 표출하기도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품고 있던 원망, 미움, 서운함의 감정들이 굳어져 버리면 독이 된다. 내면을 꾸준히 돌보지 않는다면 마음속이 독으로 가득 차게 된다. 나를 지키기 위해 만든 독이 결국 나를 고립시키고 점점 더 깊은 외로움의 늪으로 빠뜨리고 만다.


은행나무와 같은 처지의 사람이 되어버리는 건, 참으로 비참한 일이다. 지독한 독성 때문에 아무도 내게 손을 내밀지 않게 된다면, 아무리 잘난 인생이라 한들 행복할리 없다. 감정들을 안으로 꾹꾹 누르지만 말고, 그때그때 풀어주고 밖으로 표출해야 한다. 쌓이면 부패되고, 부패된 것은 반드시 독이 된다.


마음에도 디톡스가 필요하다. 우리 내면이 은행처럼 독을 품지 않도록 잘 돌보고 챙겨야 한다. 독을 품는 것이 아닌 꾸준한 해독작용만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사진출처: Photo by Olga Drach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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