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도 친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100일의 글쓰기 - 43번째

by 천세곡

항우울제를 복용하기 시작하고 하루 종일 너무 졸리다. 하품을 수도 없이 하고 집중도 잘 안 된다.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약 부작용이고 차차 나아질 거라는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처음 몇 주간은 적응기라서 부작용이 있을 거라고 했다. 며칠 더 먹어보고 그래도 부작용이 심하면 다른 약으로 바꿔보자고 했다. 약의 부작용은 내 계산에 없었던 것인데 이래저래 쉬운 일이란 없는 듯하다.


내가 겪는 부작용은 주로 졸음과 두통이다. 초반 3일 동안은 구역감도 있었는데 그건 다행히 사라졌다. 원래도 잠이 부족한 편이라 늘 피로를 달고 살기는 했지만, 지금 약 때문에 겪는 피로감은 그것의 서너 배쯤 된다.


심지어 나는 몸살감기에 걸리지 않는 이상 낮잠 따위는 자는 법이 없는 사람이다. 이런 내가 낮잠은 물론, 식후에 의자에 앉아 꾸벅거리는 게 일상이 되었다. 마음먹으면 하루 종일도 잘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까지 생겼다.


졸린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도통 무언가를 할 에너지가 생기지 않는다는 데 있다. 두통까지 겹치는 날에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일종의 무력감 같은 것으로 우울증의 증상인 듯했다. 우울증 약을 먹는데 부작용으로 우울감이 생성되다니 이게 무슨 말장난 같은 일인가?


상태가 이렇다 보니 나의 생산성은 엉망이다. 퇴사하기로 했으니 인수인계서도 작성해야 하고 마무리를 잘 지어야 할 텐데 도통 일이 손에 안 잡힌다. 집안일도 거의 손을 못 대고 있고, 그나마 하던 산책마저 잘 안 하고 있다.


글쓰기도 영 신통치 않고 점점 힘에 부친다. 다른 사람들 글도 많이 읽고 댓글로 반응도 해야 하는데 집중하기가 힘이 들어 계속 밀리고 있는 중이다. 매일 한 편씩 올려야 하는 글을 이렇게 써내는 것만 간신히 하고 있다. 유일하게 해내는 생산적 활동이면서 일종의 마지노선인 셈이다.


약도 사람 마냥 친해지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그냥 좀 까다로운 녀석이니 잘 달래면서 조금씩 친해질 수밖에. 이렇게 된 거 이참에 불규칙했던 수면 습관도 고치고, 그동안 쌓인 묵은 피로들도 해결하는 기회로 삼아봐야겠다.




*사진출처: Photo by pina messina on Unsplash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퇴밍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