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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세곡 Nov 07. 2023

인생도 배속이 되나요?

100일의 글쓰기 - 62번째

내 인생도 유튜브 영상처럼 배속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행복하기 그지없는 아이스크림 먹는 시간은 0.25배속으로, 퇴사일까지 남은 시간은 2배속이면 적당하지 싶다. 그런데 만약 느리게 와 빠르게 둘 중 하나만 고를 수 있다면 나는 지금 무조건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시간아 흘러라 흘러~” 요즘 매일 주문처럼 외우는 말이다. 말 그대로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 큰 욕심은 안 부린다. 12월 중순까지만 딱 지금보다 두 배로 시간이 흘러가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가는 세월 붙잡지는 못 할망정 이게 무슨 소리냐 싶겠지만,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왜 하필 12월 중순이냐 하면 대충 그때가 나의 100일의 글쓰기가 끝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매일 글을 쓰는 도전이 빨리 끝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쓰지 않아도 되는 날들을 열망하고 있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번 기회에 매일 쓰는 사람 되겠다는 둥 100일을 넘어 200일, 300일도 갈 것처럼 말했던 걸 나도 안다. 지금 한 입으로 두 말하고 있는 중이다. 


  사실, 그동안 숱하게 글쓰기에 대해 특히 매일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찬양을 서슴없이 해왔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는 법! 글을 쓰는 것이 매번 즐겁거나 행복한 것은 아니다. 정말 쓰고 싶은 날은 일주일에 하루 정도 될까 말까였고, 나머지 날은 쓰고 싶지 않은 날 투성이었다. 


  어느 누군가는 무슨 일이든 21일 정도 매일 하면 습관이 된다고 말했다. 해보니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글을 쓰는 것이 몸에 습관으로 배긴 했는데, 마음에도 습관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갈등하고 있는 내 마음은 그대로였다. 


  다만, 어제도 마음을 설득해 써냈으니 오늘도 어찌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일단 달리기 시작했으니 관성에 기대 간신히 해내고 있다. 지금 같아서는 100일 글쓰기가 끝나면 한동안 글을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까 봐 두려워지기도 한다.


  나에게 있어 한 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너무 쓰고 싶지 않아 하는 나 자신을 매일 설득해 내는 싸움이다. 도무지 쓰지 않으면 숨 쉴 수조차 없는 고결한 존재의 외침으로 글이 내뱉어진 게 아니라는 말이다. 언제나 쓰기 싫은 마음과 써야 한다는 의무감의 처절한 싸움 끝에 나온 것들일 뿐이다. 


  쓰면 쓸수록 글쓰기가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도전을 마치기까지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이 남았다. 100일이라는 숫자를 채우고 나도, 지금의 생각에서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이대로라면 글쓰기가 만만해지고 쉬워질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100일 지나서도 여전히 나는 고작 글 한편 쓰기 위해 나를 설득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책상 위에서 문장을 쓰고 지웠다를 반복하며 머리를 싸매고 있을 것이다. 아이스크림 먹는 순간처럼 달콤하게 느껴지지는 않더라도 시간이 2배속으로 흐르기를 바라고 있는 것만 아니라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동안 내가 교만했다. 글쓰기가 내 삶의 전부가 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일부라도 될 수 있다면 좋겠다. 그것이 나의 이번 도전의 최종 목표이다. 내 삶의 일부로 글쓰기가 더 확고하게 자리 잡기를 바라며 오늘도 이렇게 써 본다.




*사진출처: Photo by Matthew Brodeu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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