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의 글쓰기 - 61번째
직장을 다니면서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이해가 안 돼.”였다. 무능하면서 일만 저지르는 중간 관리자와 그 사람을 두둔하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상급 관리자를 보면서 “이해가 안 돼.”라는 말을 내뱉곤 했다. 뿐만 아니라, 직원들을 존중하기는 커녕 소모품으로 취급해 버리는 조직문화에 이를 갈면서 토해낸 말이기도 하다.
11월 말일자로 최종 퇴사일이 결정되었다. 전자결재로 퇴사원을 올릴 예정이다. 나의 후임자를 뽑는 채용공고도 올라갔다. 내가 퇴사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질병으로 인한 자진 퇴사다. 9년을 일하는 동안 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되었고 우울증이라는 마음의 감기를 얻었다. 그래도 스스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간 것을 보면 내 병증이 그리 심각한 수준은 아닌 듯하다. 약도 잘 복용하고 있고 의사에게 상담도 받고 있으니 퇴사하지 않고 계속 다닐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굳이 퇴사를 결정한 이유가 있다. 어떻게든 억지로 부여잡고 버틴다면 몸과 마음은 어느 정도 추스를 수 있겠으나 깨져버린 관계는 회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하고 있는 부서에서 나와 관련된 모든 관계가 깨어진 상태이다. 상사와의 관계는 물론, 동료들의 관계까지 모두 그렇다. 이것이 내 퇴사의 진짜 이유라면 이유이다. 내가 아무리 약빨로 혼자서 버틴다 해도 이미 벌어진 틈과 균열들을 메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래 일하다보니 크고 작은 충돌과 마찰은 종종 있어 왔다. 그 정도 갈등은 어느 누구나 어디에서나 겪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올 봄에 있었던 하나의 사건 이후,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나를 향한 시선과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 사건은 야유회였다. 2박 3일 경주로 가는 일정이었고, 그때가 하필 3월 말이어서 분기 마감 업무 때문에 나는 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못 간다고 했지만 가능하면 늦게라도 참석하라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나와 또 한 명의 직원만 둘째 날 합류하기로 했다. 그런데 기차표 예매를 담당하는 직원이 내게 티켓을 보내주지 않는 바람에 나는 출발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다시 티켓을 준비해서 간다고 한들 너무 늦어버리기도 했고, 어차피 업무도 마무리 되지 않았기에 사무실에 남아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것이 문제가 되었다. 나중에서 들은 이야기지만, 내가 가지 않은 것 때문에 경주에서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애초에 업무적인 성격의 워크샵도 아니고 말 그대로 놀러가는 야유회였다. 우리 회사가 비영리 기관이다 보니 이런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 자율성이 있다. 그래서 사전 조사할 때도 필참이 아니었다. 더구나 우리 부서 전체에서 나만 못간 것도 아니다. 나야 둘째 날이라도 가려고 했지 아예 처음부터 못 간다고 한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런데 그 일이 있은 뒤로 부서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다르게 대했다. 평소처럼 안부의 인사를 하지 않았고 농담도 건네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뭔가 이상했다. 결정적으로는 직원 중에 제일 가깝게 지냈던 팀장님이 계신데 그 분은 아예 나를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러기를 일주일, 한 달, 두 달이 지났고 그 때서야 느끼게 되었다. 이제 나는 이곳에서는 혼자라는 것을.
그럼에도 내가 말로만 듣던 은근한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었다. 내가 당하고 있으면서도 잘 몰랐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티가 나지 않으니 알 수가 없었다. 당하는 본인도 모르니 남들은 더 모를 일이었다. 솔직히 이건 오랜 시간 당해봐야 아는 것이다. 공지사항을 나에게만 전달해 주지 않는다거나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이야기 할 때 나에게만 말을 걸지 않는다거나 뭐 그런 식이었다.
어찌 보면 정말 별것 아닌 것이다. 공지사항을 좀 늦게 알게 되는 것뿐이고, 나에게 말 안 걸면 내가 먼저 대화를 주도해도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것은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가면을 쓰고 있는 저들에게 나 역시 가면을 쓰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됐다. 근본적인 해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별것 아니라고 여기는 저들의 행동들이 하나 둘씩 쌓여가기 시작하니 꽤나 별것인 것들이 되어 나에게 데미지로 쌓이고 있었다.
일은 되어야 하니까 업무적인 의사소통은 했다. 그것은 더 절망적인 느낌이었다. 평소에는 투명인간 취급하다가 필요할 때만 말을 거는 존재. 그게 나였다. 처음에는 자존심도 상하고 화도 났지만 반년 쯤 지나니 나도 모든 것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누군가는 내게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먼저 다가가 마음 터놓고 말해 보면 되지 않느냐고. 나는 그 말이 굉장히 무례하게 들렸다. 그리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이런 취급을 당하고 있는 시점에서 내가 먼저 다가갈 마음도 용기도 나지 않았다. 더 이상 버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까지 이해되지 않는 상황들을 마주하면서 이제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해서도 또 한 가지 깨닫게 되었다. 이해되지 않는 사람이나 상황에서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든 것을.
내가 이곳에서 일하면서 그동안 숱하게 쏟아냈던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은 이해하고자 했던 간절한 외침이었다. 나의 에너지 중 많은 부분을 이해하려는 데 쏟은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또한 이런 나를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간과하고 있었다. 여기는 직장이고, 우리는 일로 만난 사이라는 것임을 망각하고 있었다. 아무리 가족 같은 분위기에 서로가 친했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여기는 회사였으니 말이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업무적으로 대했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다는 것이 나의 불찰이다. 직장 동료를 이해의 대상으로 설정한 것 자체가 커다란 오류였다. 솔직히 말해 나라는 인간은 관계지향적이라서 사무적인 인간관계를 맺는 매커니즘 자체가 내 안에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냥 주고 싶은 만큼 주고, 받고 싶은 만큼 기대하는 그런 사람이지 계산기 두드리는 건 잘 못한다. 이해득실로만 관계를 맺지 못하는 인간이라서. 서로 이해하고 이해받는 단순하고 유치한 게 더 좋기 때문에 회사를 관두기로 결정했다. 나의 이런 성향이 잘 통하는 사람과 소통을 하고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싶다. 이해하고 이해받는 그런 단순하고 유치한 걸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보고 싶은 요즘이다.
*사진출처: Photo by Scott Graham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