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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세곡 Nov 09. 2023

역전은 못 참치

100일의 글쓰기 - 65번째

한국시리즈 1차전이 LG의 패배로 끝난 후, 나는 엘밍아웃 한 것을 후회했다. 다시금 야구를 모른 척하던 그때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29년 만에 온 우승의 기회를 날리겠구나 하는 절망감이 나를 휘감았다.


  7전 4선 승제에서 고작 한번 진 것 가지고 오바한다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프로야구팬이라면 다 알 것이다. 한국시리즈 1차전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이다. 


  1차전은 하나의 게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첫 경기에서 승리한 팀의 최종 우승 확률은 무려 74.7%에 이르기 때문이다. 야구 자체가 통계의 스포츠인만큼, 이는 절대로 무시 못 할 수치가 된다.


  그러니 나의 낙담 더 나아가 모든 LG팬들의 절망은 당연한 것이었다. 어제 2차전을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일부러 보지 않았다. 정말이다. 보고 싶지 않았다.


  저녁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습관적으로 네이버앱을 켰다. 정말 우연히 진행 중인 경기의 스코어를 보고 말았다. 5회 현재 4:1로 지고 있었다.


  깊은 빡침이 올라왔다. 그러면 그렇지. 진짜 다시는 야구를 보지 않을 테다. LG팬으로서의 은퇴를 선언해 버렸다. 더 이상 아내가 보면 안 되는 글을 쓸 필요도 없으니 차라리 속이 시원했다.


  저녁 10시가 넘어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켜고 안방에 앉아 있었다. 글감이 떠오르지 않길래 유튜브에 접속했다. 한 영상의 썸네일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극적인 역전승’이라는 글씨 뒤로 줄무늬 모양의 LG선수들이 얼싸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내가 거실에 있다. 슬며시 노트북의 볼륨을 최소로 줄이고 영상을 클릭한다. 시종일관 끌려가며 패색이 짙었으나 끝까지 포기 않은 LG는 믿을 수 없는 역전승을 거두고야 말았다.


  8회에 터진 박동원 선수의 역전 투런 홈런으로 5:4 승리를 거둔 것이다. 하이라이트 장면임에도 나도 모르게 입틀막을 하고 괴성을 질렀다. 기쁨의 환호성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내 단전을 울리고 있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미친 역전극에 LG는 기사회생했다. 더구나 역전 홈런이라니. 이건 정말 못 참치. 갓참치이신 박동원 참치님 모든 영광 받으소서! 앞으로 아무리 비싸도 무조건 동원 참치만 사 먹을 거다.




*사진출처: 노컷뉴스 "KS 2차전 드라마 주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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