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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세곡 Nov 13. 2023

프리미엄의 배신

100일의 글쓰기 - 68번째

한동안 밤마다 편의점을 돌아다녔더랬다. 10월은 하겐다즈 세일의 달이었으므로. 아내와 함께 우리 집으로부터 반경 1.5km 내의 모든 편의점은 다 샅샅이 뒤져본 듯하다. 새로운 프리미엄 맛을 탐닉하기 위해.


  그렇다. 다시 돌아온 하겐다즈 시리즈다. 이제 슬슬 지겹겠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아직 할 말이 남아있는 것을. 그놈의 하겐다즈를 소재로만 도대체 몇 편의 글을 쓰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먼저 우리 부부의 하겐다즈 시식법에 대해 소개해 본다. 우리는 한 번에 한 가지 맛을 먹는 법이 없다. 여러 가지 맛을 사놓고 각각을 조금씩 덜어서 마치 뷔페처럼 맛을 음미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생전 처음 하겐다즈를 구매하던 그날부터 한 번에 파인트 4통을 샀기 때문이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그렇게 사야 할인을 해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나름 소식좌라서 이렇게 사놓고 매일 맛보아도 꽤 오래 두고 먹을 수 있었다.


  늦게 배운 하겐다즈에 뱃살 찌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점점 배가 나오기 시작했다. 뱃살과 함께 아이스크림 욕심도 생겼다. 아직 먹다 남은 아이스크림이 냉동실에 있음에도 다른 맛이 탐이 났다. 세일 기간이 끝나기 전에 쟁여놓기로 마음먹었다. 온 동네 편의점을 돌며 먹어보지 못한 새로운 맛의 하겐다즈를 찾아 돌아다녔다. 


  문제는 그놈의 세일 때문에 한 번에 살 때마다 무조건 4통씩 사다 보니 어느 때는 약 15통 정도의 하겐다즈가 냉동실에 존재하기도 했다. 새로운 맛의 하겐다즈는 말 그대로 새롭게 맛이 있었다.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하겐다즈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쌓여가던 10월의 어느 날, 하겐다즈 세일의 마지막 날이기도 했던 그날 밤, 우리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편의점에서 유레카를 외치고 말았다. 지금까지 웬만한 맛들은 다 먹어봤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보는 맛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무런 의심의 여지없이 4가지 맛을 골라 담았다. 그리고 늘 그렇듯 쏜살같이 집으로 와 각각의 맛을 조금씩 덜어 맛을 보았다. 그 결과는…   


  읭?? 이게 무슨 맛이지?? 하겐다즈를 맛본 이래로 한 번도 미소를 잃은 적 없던 나다. 아직 삼키지도 않은 아이스크림을 입 안에서 돌려가며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새로 산 4가지 맛은 뭐랄까? 좋게 말하면 특이했고, 솔직하게 말하면 이상했다. 우리가 산 것은 허니&그레이프 프루트, 레드벨뱃 치즈케이크, 밀크티 위드 브라운 슈가, 체스트넛 타르트였다.


  복잡한 아이스크림의 이름처럼 우리 마음도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허니&그레이프 프루트는 말 그대로 허니 자몽 맛이라는데, 상큼함과는 거리가 먼 맛이었다. 첫맛은 꿀의 단맛이 너무 강했고, 뒤에 따라오는 쌉싸름한 맛은 마치 찻잎의 향 같기도 했다.


  체스트넛 타르트 맛도 밤의 맛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고, 인위적인 단맛만 강하게 다가왔다. 눅눅하게 씹히는 식감이 있어서 왜 타르트인지는 알만했다. 그러나 역시 불호였다.


  레드벨뱃 치즈케이크는 개인적으로 최악의 맛이었다. 처음에 약간 쉰내가 나서 아이스크림이 상한 건가 싶기도 했다. 치즈에서 나는 향이었다. 씹을 때마다 꼬릿 한 냄새가 나서 괴로웠다. 아내는 아이스크림이 유통과정에서 문제가 있어서 녹았다가 얼어서 진짜 상한 게 아닌지 의심했지만 처음 먹어보는 제품이라 비교 대상이 없어서 알 길이 없었다.


  그나마 밀크티 위드 브라운 슈가가 먹을 만하긴 했는데 이름처럼 밀크티 맛이 존재감 있게 나타나지는 않아서 한 번은 먹어볼 수 있겠으나 굳이 재구매는 안 할 듯싶었다. 하겐다즈라는 이름만 믿고 구매했거늘, 이번에 산 4가지 맛은 모두 실패다. 프리미엄의 배신이 아닐 수 없다.


  하겐다즈 아이스크림도 시즌 한정 메뉴까지 있어서 알고 보면 엄청나게 다양한 맛을 판매하고 있다. 만일 당신이 하겐다즈를 구매할 예정이라면 최근 거의 모든 맛을 다 먹어본 사람으로서 강력하게 추천하는 바이다. 모험하지 말고, 무조건 스테디셀러를 사시라. 하겐다즈는 클래식이 최고다.


  녹차, 딸기, 초코, 바닐라 이에서 벗어나는 것은 쳐다보지도 말라. 이상한 건더기 들어간 것들은 굳이 필요 없다. 아이스크림은 모름지기 씹지 않고 녹여 넘길 수 있는 게 최고다. 굳이 식감이 아쉽다면 쿠앤크나 마카롱이 들어간 것 정도까지가 마지노선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입맛에 따른 것일 뿐, 반박 시 당신 말이 무조건 옳다. 이로서 하겐다즈 맛탐구의 대장정을 마쳤다. 당분간, 하겐다즈와는 빠이빠이다. 


  자, 그럼 이제 밴앤제리스로 넘어가 볼까?








*사진출처: 천세곡의 사진첩, 밴앤제리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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