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세곡 Nov 08. 2023

한 뚝배기 하실래예?

100일의 글쓰기 - 63번째

정말 말도 안 되는 날씨다. 추워도 너무 춥다. 어제 세차게 내린 비와 함께 기온이 10도 이상 떨어져 버렸다. 냉방에 맞춰진 자동차 에어컨을 급하게 난방으로 바꾸어 차를 출발시킨다. 


  경차이지만 차를 몰고 다닐 수 있음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흔들리는 차창 밖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니 패딩은 보통이고 목도리도 등장하셨다. 오늘 같이 추운 날, 이 작은 차마저 없었다면 나도 저렇게 떨면서 걷고 있었겠지.


  때 아닌 고온 현상으로 11월에도 반팔을 입게 만들더니만 이제야 날씨가 정신을 차린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여전히 맥락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하루 이틀 단위 치고는 너무 극단적인 온도 변화에 어찌 적응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는다.


  하필 오늘따라 구내식당이 내부 사정으로 인해 문을 닫았다. 회사 근처에는 딱히 식당이 없기에 옆 동네로 나가야 한다. 오늘 같이 추운 날 밖으로 나가서 밥을 먹어야 한다니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모든 직장인들의 고민 앞에 봉착하고 만 것이다. “점심 뭐 먹지?”라는 희대의 난제 앞에 설 수밖에 없다. 구내식당의 좋은 점은 비단 싼 가격에만 있지 않다. 도무지 정답을 찾을 수 없는 점심 메뉴 선정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는 어마무시한 장점이 하나 더 있다. 그저 주는 대로 먹으면 되니까 말이다.


  더구나 결정 장애까지 있는 나에게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은 곤욕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오늘은 무엇에 홀렸는지 고민 없이 갈비탕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맥락 없는 날씨처럼, 내 의식의 흐름 역시 맥락 따위는 없었다.


  갈비탕을 파는 식당까지는 버스로 4 정거장이다. 빠른 걸음으로는 20분 거리다. 버스를 탈까 하다가 걸어가기로 마음을 바꿨다. 왜 사서 고생이냐 싶기도 하지만, 갈비탕을 온전히 즐기기 위한 나름의 사전작업이라 해두겠다.


  추운 바람을 뚫고, 20여분을 걸어 갈비탕 집에 도착했다. 춥고 배고픔 그 자체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상태에 도달한 나는 마치 이제 막 순례길을 마친 수도자처럼 경건한 마음으로 뚝배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먹지 않아도 알았다. 내 앞에 있는 이 갈비탕은 맛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뼈에 붙은 고기를 잘 발라내어 입 속에 집어넣는다. 고기가 입안에서 결대로 찢어질 때쯤 깍두기도 한 입 베어문다. 고기와 깍두기무가 뒤섞이면 뜨끈한 갈비탕 국물로 입 안을 정화시킨다.


  역시나 맛있다. 원래도 맛있었는데 오늘은 훨씬 더 그렇다. 고민 없이 갈비탕을 선택하게 만들어준 오늘의 날씨를 칭찬한다. 


  하루아침에 추워진 날씨가 나를 ‘결정장애’에서 ‘결정잘해’로 만들어주었다. 그나저나 내일도 춥다는데 구내식당 가지 말고, 한 뚝배기 더??





*사진출처: 천세곡의 사진첩

매거진의 이전글 프리미엄을 함께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