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의 글쓰기 - 69번째
옛날 아주 먼 옛날, 푸른 용 한 마리가 살고 있었어. 그 용은 세상을 두루 다니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었지. 그러던 어느 날, 푸른 용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산 위에 우뚝 서더니 입에 야구공을 물고는 하늘 높이 사라져 버렸어. 그런데 푸른 용이 사라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산자락 아래의 어느 집에서 우렁찬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는 거야. 사람들은 놀라서 모여들기 시작했어. 바로 눈부시게 빛나는 쌍둥이들이었지.
LG트윈스의 우승은 내게 아주 까마득한 옛이야기였다. 예전에 한번 그런 적이 있었더라 싶은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 내 남은 평생 다시 또 마주할까 싶은 꿈만 같은 이야기.
내가 기억하는 그들의 가장 뜨거웠던 야구는 1994년이다. 94년은 여러 가지 의미로 무척 뜨거운 한 해였다.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기록적인 폭염이 그 해 여름에 있었고, 전국이 레게 열풍으로 달궈질 때였다. 그 열기들 속에서 LG트윈스의 꼬마 팬이 되어 그들의 가을야구를 뜨겁게 응원했다. 그리고 나의 염원대로 LG 트윈스는 그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뤄냈다.
솔직히 94년 한국시리즈 경기들이 잘 생각나지 않지만, 1차전만큼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LG트윈스와 당시 맞붙었던 태평양 돌핀스는 1대 1 비긴 채로 9회 말까지 승부를 보지 못했었다. 결국, 연장전에서 대타로 나선 LG의 김선진 선수가 좌월 끝내기 홈런을 쳐내면서 간신히 승리를 할 수 있었다. 이후 기세가 붙은 LG는 내리 4차전까지 이겨내면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당시의 기억이 이리도 생생한 것은 그 뒤로 LG는 우승을 단 한 번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내 머릿속에 업데이트될 만한 우승의 추억들이 생기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내 머릿속의 지우개가 생겨났는지 나는 팬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LG를 잊었고, 야구 자체를 잊고 살아왔다.
94년 LG의 우승을 지켜볼 때만 해도 그런 순간들이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올해 우승했으니 내년에도 우승이나 준우승 정도는 하겠지 싶었다. 다시 우승의 순간을 기대하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은 그때는 꿈에도 몰랐다.
정확히 29년 걸렸다. LG트윈스의 우승 기억이 오늘부로 업데이트되었다. 이제 더 이상 해묵은 94년도의 전설 같은 이야기나 되뇔 필요가 없어졌다. 2023년 바로 오늘, 슈퍼 쌍둥이들이 정상에 우뚝 서서 팬들을 향해 포효하고 있다. 무적 LG는 더 이상 전설이 아니다.
94년의 불꽃은 거의 사그라들고 작은 불씨만 겨우 남은 상태였다. 마지막 열기가 사라지기 전에 다시금 뜨겁게 타오를 수 있게 해 준 LG트윈스 선수단 모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지금 이 순간 당신들을 응원한 모든 팬들은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94년의 가을보다 지금의 계절이 더 뜨겁다. 당신들이 너무 자랑스럽다. 아니, 사랑스럽다.
*사진출처: 한국시리즈 5차전 생중계 캡쳐, LG그룹 유튜브 채널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