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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세곡 Nov 16. 2023

사랑니 떠나가네 - 상

100일의 글쓰기 - 71번째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왜 난 또 이곳에 누워있는 것일까?


  어제 왼쪽 위와 아래의 사랑니를 성공적으로 발치한 나.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사실상 느낀 통증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아예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마취 풀리는 순간 20분 정도는 좀 아프긴 했다. 하지만 참을 만했으며, 약을 먹기도 전에 통증이 가라앉아 그 뒤로는 전혀 아프지 않았다.


  게다가 볼도 많이 붓지 않았고 멍이 들지도 않았다. 얼음팩 찜질도 거즈를 물고 있는 동안만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심지어 깊고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나, 치과가 체질인가 보다.


  아픔은 별로 없었는데 불편함은 좀 있었다. 바로, 먹는 것이다. 한쪽으로 조심해서 씹어야 했기에 죽을 먹었다. 반찬도 오래 씹어야 하는 것은 당분간 먹으면 안 된다. 자극적이고 맵고 뜨거운 것도 먹지 말란다. 내 평생소원이 벌크업인데, 강제 다이어트가 따로 없다.


  또한 처방된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 하는 것도 무척 귀찮았다. 게다가 나는 목구멍이 좁아 슬픈 짐승으로서 알약 먹는 것을 엄청 싫어한다. 약을 먹어야 하는 3일의 시간이 빨리 흘러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한마디로 사랑니를 뽑았다고 다가 아니었던 것이다. 발치 후에도 이것저것 조심하고 챙길 것들이 참 많았다. 그리고 이 말인즉슨 추후 오른쪽 사랑니를 발치하고 나서 똑같은 과정들을 한 번 더 반복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슈퍼 초특급 울트라 뉴진스 아이브 귀차니스트인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다. 그러다 오늘 아침 나는 기가 막힌 묘수를 떠올리게 된다. 바로, 하루 만에 오른쪽 사랑니들도 뽑아버리는 것.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어차피 해야 될 모든 과정을 이번 한 번에 퉁 칠 수 있게 되는 거다.


  더구나 어제 발치를 생각보다 수월하게 한터라 두려움도 없었다. 이런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 나의 머리와 어깨를 쓰다듬어 주며 치과에 전화를 걸었다. 



-어제 사랑니 발치한 천세곡인데요. 나머지 사랑니도 빨리 빼고 싶은데 가능한가요? 생각보다 별로 아프지 않더라고요.


-네, 천세곡님. 그래도 발치하신 왼쪽이 어느 정도 아무신 다음에 하시는 게 좋긴 한대요. 빨리라면 언제쯤 하시길 원하실까요?


-오늘도 되나요?


-그… 그렇게 빠… 빨리요…???



  조금 놀랐는지 직원은 원장쌤과 상의를 하더니, 나만 괜찮다면 그래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더구나 오늘은 야간진료 하는 날이어서 더 괜찮다고 했다. 쿨하게 저녁시간으로 예약을 마친 나는 퇴근하자마자 치과로 달려갔다.


  벌벌 떨던 나는 이제 없다. 고작 두 번째 오는 치과인데 내 집에 온 것 같은 편안함마저 들었다. 잔뜩 긴장해서 가만히 누워만 있었던 어제의 나와는 달리 치과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물도 한 잔 마시며 차분하게 순서를 기다렸다.  


  원장쌤이 등판했다. 나는 미소를 머금고 눈까지 맞춰가며 여유롭게 인사를 건넸다. 어제 괜찮았냐고 묻는 원장쌤의 물음에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고 너스레도 떨어본다. 이때까지는 전혀 몰랐다. 이후에 엄청난 비극이 닥치게 될 줄은….




-계속-




*사진출처: Photo by Colourblind Kevi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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