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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세곡 Nov 18. 2023

사랑니 떠나가네 - 하

100일의 글쓰기 - 73번째

마지못해 눈을 떴다. 방의 불을 켜고 이불을 개려는데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왜냐하면…


  


  늦잠을 자버렸기 때문이다. 젠장, 망했다. 이불을 그대로 내팽개치고 욕실로 달려갔다. 밤새 나를 괴롭혔던 비릿한 냄새는 더 이상 나지 않았다. 꿈이었나? 빛보다 빠른 속도로 머리를 감고 세수를 했다. 옷을 입기 위해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이불을 마저 정리하기 시작했다. 순간 뇌정지가 온 나. 이게 뭐지? 분명 핏자국인데?? 베개를 포함해 주변 이불까지 온통 피 얼룩으로 가득하다. 매우 짧은 순간이지만 여러 가능성들을 타진해 본다. 여드름이 터졌나? 사춘기도 아닌 사십춘기에 터질 여드름이 있을 리 만무하다. 게다가 핏자국도 너무 크다. 


  아니면 자는 동안 누가 날 때린 것일까? 현장에서 곤히 자고 있는 아내님을 3초 정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일단은 그냥 믿어보기로 한다. 그때였다. 입 안에서 꽤 큰 이물감이 느껴졌다. 말랑말랑 따뜻하기까지 했다. 읭?? 이게 뭐지?? 


  다시 화장실로 가서 거울을 보고 입을 벌렸는데 온통 피투성이였다. 느껴졌던 이물감은 다름 아닌 피가 선지처럼 굳어진 것이었다. 불량식품 먹은 것 마냥 온 입이 새빨갛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요가 수련 때 배운 호흡을 몇 차례 내쉬었다. 그리곤 뺨을 두드려 대며 잠을 완전히 깨웠다.


  어제 발치한 오른쪽 아래 사랑니가 문제였다. 지혈을 충분히 한다고 했는데도 덜 되었던 모양이다. 나는 밤새 단잠을 자면서 피를 질질 흘렸던 것이다. 상황파악이 완료되니 괜히 어지러운 느낌이 든다. 


  결국 치과 여는 시간에 맞춰 오픈런을 시전 했다. 원장쌤은 이튿날까지 지혈이 안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너무 걱정하지 말란다. 지혈제를 넣은 뒤 다시 거즈를 물고 나왔다. 


  이때부터였다. 지옥이 시작된 것이. 거즈를 문 순간부터 엄청난 통증이 몰려왔다. 위아래 잇몸은 물론 왜 그런지 알 수는 없지만 볼 살까지 너무 아팠다. 누가 면도칼로 긁어내리는 듯한 느낌이랄까?


  시리고 찌릿한 통증이 신경을 타고 대뇌 전두엽까지 전달되었는지 머리까지 아프다. 그냥 얼굴 오른쪽 전반이 다 미친 듯이 아파왔다. 사랑니를 드러낸 곳은 말 그대로 속살 그대로였기에 거즈가 닿는 것만으로도 통증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제 발치 직후 거즈를 물었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하루 지나 마취 기운 없이 거즈를 물고 있자니 미칠 노릇이었다. 입을 살살 다물면 덜 아팠지만, 그렇게 되면 또 지혈이 안될 수 있으니 눈물을 머금고 계속 세게 물 수밖에 없었다.


  발치 자체는 문제가 없었으나 운나쁘게도 지혈이 잘 안 되는 바람에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겪게 되었다. 어제의 성공이 오늘의 실패가 되는 순간이다. 어쩐지 잘 넘어가나 싶었다.


  슬립백 춤은 망할. 몸부림치면서 고통의 춤사위를 선보이는 중이다. 이렇게 사랑니는 떠나가면서 내게 아픔을 아낌없이 주고 떠나갔다. 


  짧지만 강렬했던 너와의 추억. 역시 뭐든지 제대로 하면 아프다. 사랑도. 사랑니도.




-끝-






*사진출처: Photo by Colourblind Kevin on Unsplash, 네이버 검색 "무한도전 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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