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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세곡 Nov 22. 2023

새 차가 좋아.

100일의 글쓰기 - 77번째

무엇이든 새것을 좋아한다. 핸드폰, 태블릿 같은 전자제품은 말할 것도 없고 각종 생활용품을 비롯해 하물며 책 한 권 조차도 중고를 잘 사지 않는다. 종류를 불문하고 어지간하면 새 제품을 고집한다.


  중고거래를 태어나서 아주 안 해 본 것은 아니지만, 거의 손에 꼽는다. 그 흔한 당X마켓, 번X장터에 아이디조차 없다. 중고거래의 꽃이 유아용품임을 고려할 때 아직 아이가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새것만이 주는 쾌감이 있다. 해당 물건이 만들어지고 나서 최초의 사용자가 된 다는 것. 내 지문을 묻혀 흔적을 남긴다는 것은 나에게는 좀처럼 포기하기 어려운 쾌락이다.


  새것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늘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다. 문제는 살아가면서 필요한 모든 것을 100% 다 새것으로 갖출 수 없다는 데 있다. 특히 일생에 몇 번 가져 볼 수 없는 고가의 물건일수록 더욱 그렇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자동차다. 첫차는 나도 어쩔 수 없이 중고차를 구입했었다. 차가 필요했는데 당시의 형편으로는 큰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중고차를 운행하다가 지금 몰고 있는 경차를 새것으로 구입하게 된 것이다. 


  새 차를 인도받았을 때의 그 기분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내부에 잔뜩 붙어있는 비닐들을 뜯어낼 때의 쾌감이 아직도 선명하다. 새 차에서만 나는 그 특유의 냄새. 사실 화학적인 냄새라 몸에 별로 좋은 것도 아닌데 새 차 냄새가 사라질까 한동안은 차 안에 방향제도 두지 않았었다.


  그랬던 그 차가 벌써 운행한 지 7년이 넘었다. 아직 멀쩡해서 10년은 더 족히 탈 수 있을 것만 같다. 물론 여기저기 긁힌 자국도 많고 세월의 흔적도 선명하다. 자연스레 기변 욕구가 올라온다. 틈만 나면 유튜브에서 신차 영상 리뷰를 찾아본다.


  내 형편에 이 차 정도면 차고 넘침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차를 바꿔야 할 만한 나름의 타당한 이유들을 떠올리기 위해 애써본다. 아 맞다. 나 이번달에 퇴사하지…


  퇴사가 나의 명분 없는 소비를 막아주었다. 아마 퇴사하지 않았다면 내 자신을 지금의 회사에 더 단단히 묶어두기 위해서라도 할부로 차를 계약했을지도 모른다. 이것도 퇴사의 순기능이라고 봐야 되나? 


  새 차를 탈 수 없는 아쉬운 마음에 세차라도 해본다. 오랜만에 큰맘 먹고 출장 스팀세차를 불렀다. 차량 외부와 내부가 깨끗해져서 광이 난다. 나는 똑똑히 보았다. 내 차 위를 거닐던 개미 한 마리가 미끄러져 안타깝게도 운명을 달리한 것을.


  차에 탔다. 눈을 잠시 감고 숨을 크게 들여 본다. 어디선가 냄새가 난다. 세차 냄새인지, 새 차 냄새인지 헷갈리는 그런 냄새가.








*사진출처: Photo by Devon Janse van Rensburg on Unsplash, 천세곡의 사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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