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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세곡 Nov 28. 2023

바나나를 생산 중이다.

100일의 글쓰기 - 83번째

우울증 약을 복용한 지 두 달이 다 되어간다. 작은 알약 몇 개는 내 삶을 제법 크게 바꾸어 놓았다. 약의 효능이 이렇게까지 강력할 줄은 몰랐다.


  처음에 복용했던 약은 효과가 무척 좋았다. 감정도 차분하게 해주는 듯했고 무엇보다 물을 잘 못 삼켰던 증상이 많이 호전되었었다. 그런데 약효가 좋은 만큼 부작용도 강했다.


  메스꺼움을 동반한 두통이 심했는데 다행히도 이러한 증상은 삼일 정도 지나니 가라앉았다. 그런데 그다음부터는 하루 종일 쳐지고 무척이나 졸렸다. 낮잠을 거의 자지 않는 나인데 사무실 책상에서 앉은 채로 곯아떨어진 적도 있었다.


  졸린 건 둘째치고 머리가 멍해서 무언가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그냥 마냥 자고 싶었고 누가 말리지만 않는다면 하루종일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자는 것에 이렇게까지 자신감이 나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렇게까지나 졸리니 업무 처리가 수월할리 없었다. 아무리 퇴사를 앞두고 있다지만 해야 할 것들이 있으니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의사 선생님과 상의한 끝에 약을 바꾸었다. 조금 덜 센 약으로 말이다.


  새로 처방받은 약을 먹기 시작하니 졸린 증상이 많이 개선되었다. 덕분에 회사와 헤어질 열심도 내면서 막판 스퍼트를 낼 수 있었다. 대신 물을 삼키는 것이 다시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부작용과 약효는 정비례하는 것일까?


  그래서 지난주에는 다시 이 부분을 상담했고, 불안을 줄여주는 약을 하나 더 처방받았다. 일주일째 약을 먹어 있는데 목 넘김 증상은 딱히 호전이 없다. 다만 예기치 않은 또 다른 부작용이 나를 심하게 괴롭히는 중이다.


  바로 변비다. 나에게 변비는 무척이나 낯선 것이다. 왜냐하면 나란 사람은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 있어서 화장실을 자주 가고 매우 소프트한 제형을 배출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건강의 척도라는 그놈의 바나나 모양은 일 년에 몇 번 재배하지 못한다.


  그런데 가장 최근 바뀐 약에 도대체 무슨 성분이 들었는지 연일 바나나를 출하시키는 중이다. 뱃속에 바나나 농장이라도 차렸는지 안정적인 생산량을 보여준다. 여기까지만 보면 괜찮은 부작용인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이놈의 바나나가 날이 갈수록 굵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허용치를 넘어버리니 꽤나 곤욕스럽다. 바나나를 출산하는 것도 아니고 엄청 긴장하고 힘 조절을 잘해야지만 간신히 나와준다.


  결국, 오늘도 병원에 가서 선생님께 해당 증상을 말씀드렸다. 또 다른 약으로 처방을 바꿔보자고 하신다. 이번에는 약효도 좋으면서 부작용이 없기를 바라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실망은 하지 않으려 한다. 어차피 단기간에 회복될 거라는 욕심은 없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치지 않았으면 한다.


  약을 복용하면서 내 몸은 이런저런 변화를 겪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다 치료를 위한 과정임을 믿는다. 그 믿음 가지고 약이 내 마음속 우울감과 싸우는 동안, 나도 내 몸속 부작용과 싸우고 있다.





*사진출처: Photo by Louis Hansel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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