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의 글쓰기 - 84번째
이별의 순간은 예고도 없이 갑자기 찾아왔다. 헤어질 결심과 열심을 지나온 나에게 드디어 그날이 이르렀다. 마음의 준비를 할 틈도 없이.
오늘은 외부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내일모레면 퇴사를 하는 나를 위한 송별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부서 사람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나는 사람들에게 감사와 고별의 인사를 전했다.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이 섞여 있는 이 자리가 썩 내키지 않았다. 어차피 관두는 거 송별회를 거절할까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마음을 고쳐먹게 된 건, 마지막 순간에 웃음을 짓지는 못할지언정 서로 인상 쓰면서 보낼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어색함 반, 억지 반의 미소를 띠워 보냈다. 이게 당분간 내 마지막 사회생활이라는 생각으로. 몇 안 되지만 나에게 잘해준 사람들과는 몇 마디 더 나누었다. 그래도 아직 이틀이라는 시간이 남았으니 너무 깊은 인사는 하지 않았다.
막 식사를 하려는데 상사 중 한 분이 나에게 다가왔다. 내가 왜 힘들었고 관두게 되었는지를 그나마 아는 분이었다.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로 마무리 짓고, 남은 이틀은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갑자기? 오늘? 나름대로는 나를 배려해 주신 것이기는 하지만,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생각지도 못하게 오늘이 마지막 날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얘기를 함께 들은 주변 동료들도 놀란 눈치였다.
다만 하루 이틀이라도 조금 미리 얘기해 주시지 하는 아쉬움이 든다. 하긴, 이곳은 그런 체계가 잘 잡혀있지 않은 곳이긴 하다. 아무튼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에 나는 오후 시간을 열심히 달릴 수밖에 없었다.
어지간한 퇴사 준비들은 이미 다 해놓았다. 개인 짐도 며칠 전부터 조금씩 정리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천만다행이다. 오늘 해야 할 업무 몇 가지를 빠르게 처리했다. 인수인계서를 다시 한번 검토 한 뒤 제출하고 혹시 몰라 바탕화면과 업무용 웹하드에도 저장했다.
인수인계와 관련된 폴더 몇 개만 남기고 정리했더니 컴퓨터 바탕화면이 휑하다. 놓고 가는 것은 없는지 서랍을 한 번씩 열어보고는 텅 빈 책상을 뒤로하고 일어선다. 오늘 이후로는 내 책상이 아니다.
사무실을 나서며 사람들과 정말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데 기분이 이상하다. 안 그럴 줄 알았는데 가슴이 약간 먹먹해진다. 복도를 걸어 나가며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길.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날이 오면 지상으로부터 2미터쯤 점프하면서 기뻐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런 기분이 안 든다.
헤어질 열심 어쩌고 해 왔지만, 이틀이나 먼저 찾아온 회사와 작별의 인사를 하는 순간을 맞닥뜨리니 실감이 나질 않는다. 그동안 준비한다고 했는데 몸으로만 준비했을 뿐, 정작 마음의 준비는 부족했던 것일까? 갑자기 맞이한 이별 앞에 마음은 아직이었나 보다.
*사진출처: 천세곡의 사진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