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의 글쓰기 - 87번째
ASMR은 나의 자장가다.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고 해당 영상을 재생한다. 불을 끄고 가만히 누워 눈은 감고 귀는 잠시 열어둔다. 귀를 속삭여주는 갖가지 소리들이 나를 꿈속으로 이끈다.
ASMR이란, 엄청 긴 영어의 약자다. 영어 단어는 중요하지 않으니 넘어가자. 자율감각쾌감 반응이라고 번역되던데 시각, 청각 등을 자극해 안정감이나 쾌감을 유도하는 것이다. 유튜브에 관련 영상들이 무척 많은데 주로 영상과 소리에 집중되어 있는 편이다.
뇌를 자극해 심리적 안정을 유도하는 소리를 담은 영상들이 대표적이다. 사람의 속삭이는 목소리, 빗소리, 심지어 컴퓨터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까지 꽤 다양한 ASMR영상들이 존재한다.
나의 원픽은 바버샵 ASMR이다. 남자의 머리카락을 커트하는 가위질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런데 내가 이런 소리를 자장가로 인식한다는 것은 사실 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나는 늘 머리만 자르면 졸렸다. 서걱서걱 머리카락이 잘려가는 소리와 빗과 가위가 부딪히면서 나는 소리들이 어우러지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곤 했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달라는 디자이너님의 말에 깜짝 놀라 깨기 일쑤였다.
내가 무슨 삼손도 아닌데 머리에 가위를 대기 시작하면 몸에 힘이 빠지고 나른해진다. 더 정확히는 가위질 소리가 내 청각을 통해 안정감을 주는 듯하다. 사실상 ASMR이란 게 세상에 알려지기 훨씬 이전부터 가위질 소리가 나에게는 수면제였던 것이다.
여러 가지 종류의 영상들이 있음에도 바버샵 영상을 유독 선호하는 이유다. 효과가 생각보다 좋아서 영상을 끝까지 재생해 본 적은 거의 없다. 어느새 잠들어버렸기 때문에.
그러고 보면, 어린 시절 엄마가 불러준 자장가도 일종의 ASMR이 아니었나 싶다. 속삭이는 듯한 엄마의 목소리로 들려오는 노래는 품에 안긴 아기에게 깊은 안정감과 편안함을 주었을 테니까. 좋은 음향 시설과 깔끔한 편집으로 만들어진 영상들도 좋지만, 역시 사랑하는 사람의 숨결이 담긴 노래가 최고인 것 같다.
*사진출처: Photo by Kelly Sikkema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