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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세곡 Jan 07. 2024

맛있는 떡볶이집의 수는 전국 학교의 수와 같다.

딱 한번 만나분식에 가 본 적이 있다. 몇 년 전 아내와 함께 은마 아파트 근처에 갈 일이 있었는데 마침 저녁 먹을 시간이어서 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다. 은마 지하상가 안을 돌아다니다가 사람이 유독 북적대는 분식점이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만나분식이었다. 


  아내와 나는 소식좌라서 식사량이 그닥 많지는 않다. 일반 식당에 가서 먹기에는 아무래도 음식이 남을 듯해서 차라리 분식을 먹으면 좋을 것 같았다. 거기에 가격도 저렴한 편이라 더 좋았다.


  만나분식에서는 세월의 흔적이 물씬 났다. 사실 이러한 노포의 향기는 아파트 상가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음식점들에서 나고 있었다. 물론, 개업한 지 얼마 안 된 가게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래된 지하상가 안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곳에 존재하는 모든 음식점들은 저마다의 아우라를 뽐내고 있는 듯했다. 


  워낙 사람이 많아서 조금은 기다려야 했다. 기다림은 기대감을 더욱 불러일으켰다. 이 비싼 강남땅에 더 맛있고 고급진 음식점들이 많을 텐데 어둡고 지저분해 보이기까지 하는 곳에 왜 사람들이 몰리는 것일까.


  떡볶이 냄새와 튀김 냄새를 옷에 새기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빈자리가 생겼다. 자리에 앉은 아내와 나는 떡볶이와 김밥 한 줄을 주문했다. 그리고 한 5초 정도 고민하다가 튀김도 1인분 묻혀 달라고 말했다. 


  실컷 소식좌 어쩌고 했지만, 결국 우리는 욕심을 부렸다. 남들은 일부러 찾아오기도 하는 나름 맛집인데 이왕 온 김에 맛보자는 심산이기도 했다. 더군다나 떡볶이를 먹는데 양념에 튀김을 묻혀 먹지 않는다? 이건 배우지 못한 무식한 사람이라는 걸 인증하는 꼴이다. 





  떡 하나와 떡볶이 국물에 적당히 눅눅해진 튀김 한 조각을 동시에 집어 입에 넣었다. 눈을 감고 천천히 씹어본다. 떡의 쫄깃함이 느껴지더니 이내 튀김의 기름진 맛과 떡볶이 양념이 어우러져 육즙마냥 치고 나왔다.


  모름지기 튀김은 바삭한 맛에 먹어야 한다는 게 내 평소 지론이다. 인류 탄생 이래 지겹도록 논쟁하고 있지만, 여전히 합의를 보지 못한 부먹 VS 찍먹 중 굳이 내 입장을 밝히라고 한다면 찍먹일 정도니 말이다. 그럼에도 예외는 있는 법, 바로 오늘과 같은 음식을 먹을 때는 그렇다.


  부먹이냐 찍먹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모두가 당연한 듯 버무려 먹었던 음식이었던 만큼 옛날 그 방식대로 즐기는 것이 합당하다. 솔직히 이건 입으로 먹고 있지만, 동시에 추억으로 먹는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추억이 없다면 만나분식은 엄청난 맛집은 아닐 수도 있다. 이 눅진하고 달달한 떡볶이가 어른의 입에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서 오히려 나는 너무나 맛있었다. 처음 와본 곳임에도 무척이나 익숙한 맛. 고등학교 때 야자시간 땡땡이치며 갔던 학교 후문의 떡볶이 집에서 먹던 바로 그 맛이었다. 


  특별할 것 없는, 여느 학교 앞에 있을법한 분식집에서 느낄 수 있는, 학창 시절의 추억이 듬뿍 담긴 맛이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또 있는지 교복 입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데이트하는 커플과 나이 지긋하신 어른들도 상당했다. 맛이 그대로라면서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떡볶이를 입에 넣고 있다.


  만나분식 사장님이 건강상의 이유로 곧 영업을 종료한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괜히 서운했다. 내가 근처 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추억 하나가 사라지는 듯해서이다. 가게가 문을 닫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맛을 보려고 오픈런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충분히 공감된다.


  사람의 인연만큼이나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장소들도 영원하지 않은 듯하다. 문득, 고등학교 때 주린 배를 채워주던 쫄라를 먹던 분식집이 떠오른다. 조만간 꼭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오래되어서 가게 이름도 희미해졌고 정확한 위치도 어디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추억을 더 잃어버리기 전에 다시금 새길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추억의 맛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프랜차이즈 떡볶이집의 전성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이지만 친구들과 함께 돈을 모아 사 먹던 그때 그 시절의 맛은 어떤 레시피도 흉내 낼 수 없다. 맛있는 떡볶이 집의 수는 전국에 있는 학교의 수와 같다는 진리를 믿으며, 오늘도 나는 그곳을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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