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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세곡 Jan 02. 2024

내가 빌고 싶은 진짜 복

10년도 넘은 것 같다. 네 자릿수 연도 중 뒤의 두 자리가 영 어색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 ‘23’이라는 숫자에 적응하지 못했는데 오늘부로 ‘24’로 바뀌었다.


  해가 바뀌었다고 하여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 어제와 비슷한 밥을 먹고 평소와 다르지 않은 하루를 보냈다. 몇몇 지인들과 새해 인사를 카톡으로 주고받은 것만 빼곤 지극히 평범한 하루였다.


  그럼에도 이렇게 맞이하는 새해가 나쁘지 만은 않은 듯하다. 별 감흥 없이 맞이하는 나에게도 공평하게 새로운 아침의 해는 밝았으니까. 꼭 12월 31일 자정에 카운트다운을 함께 외쳐 세고, 1월 1일 새벽같이 일어나 명소로 달려가 일출을 보아야만 24년의 햇살이 비춰주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어차피 모든 날들은 그저 보통의 날들일뿐이다. 특별한 날도 특별한 해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의미를 부여했으니 특별하게 느껴질 뿐이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기리는 행위는 이미 있는 것이 의미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의 발로일 것이다.


  1년에 한 번 맞이하는 오늘 이 날을 신정이라고 말하기로 했고, 서로에게 덕담을 하며 복을 빈다. 지나간 해에 대해서 고생했다고 말하는 위로도 빠뜨리지 않는다. 사람들끼리 안부를 묻고 안녕을 기원하는 새해인사가 다소 샤머니즘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것만큼 인간됨의 정서를 잘 반영하는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인생은 문제와 고통의 연속이다. 사실 우리가 체감하는 삶이란 고해에 더 가깝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그렇다. 너무 비관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새해를 맞이하면 맞이할수록 우리에게는 만남보다 헤어짐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아지는 것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였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복을 빌며 다 잘 될 거라고 말하는 것은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진심을 다해 빌어주는 것이지만 내뱉은 축복의 말들이 일어날 사건과 사고를 막아주지는 못한다. 아무리 간절히 빌어도 일어날 일들은 일어나고야 만다.


  그렇지만, 하나의 가능성은 있다. 내가 덕담을 해주고 복을 받기를 바라는 대상, 바로 그 사람 자체가 유일한 희망이 된다. 다가올 삶의 힘든 일들을 막을 재간은 없으나, 그 일을 겪게 될 사람은 감당할 힘을 키울 수 있고 성장과 변화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있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에게 새해 복을 빌어줄 때 그가 낙심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인사한다. 물론, 나 역시 그들에게 좋은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나기를 바라지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좌절하지 않기를 더 간절히 바란다. 끝내 승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야말로 내가 빌고 싶은 진짜 복이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새로워질 수 있는 것은 마음이라고 믿는다. 어제와 같은 오늘, 그저 달력의 숫자 하나 바뀐 것에 의미를 부여한 보통의 똑같은 날일 뿐이지만, 작년보다 더 굳건히 서서 넘어지지 않기를 빌고 또 빈다. 어떤 문제 앞에서도 용기와 지혜가 충만하기를, 사람들과 나 자신에게 새해 복이 가득하기를 마음에 담아본다.





*사진출처: Photo by Seif Am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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