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하얀 겨울
창문을 열었더니 눈이 제법 많이 온다. 올 겨울은 유독 눈이 많이 오는 듯하다. 횟수도 횟수지만, 한번 오면 꽤 많은 양의 눈이 내린다.
올 겨울 날씨는 유독 변덕이 심하다. 한창 추워야 할 때는 너무 따뜻하질 않나 하루아침에 기온이 10도 넘게 떨어져 뼈가 시릴 만큼 미친 듯이 춥기도 했다. 그리고 눈이 내리면 오늘처럼 쌓일 만큼, 대책 없이 온다.
도무지 적당함을 모르는 이 놈의 계절이 영 적응이 안 된다. 맥락 없이 반전의 반전만 거듭하는 것 같아 당황스럽다. 어쩌다 한번 있어야 할 일들이 자꾸 반복되어 생기니 이제는 ‘이상 기후’가 아니라 ‘일상 기후’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상함이 일상이 되어서일까. 언제부터인가 눈이 와도 별로 설레지 않게 되었다. 설레기는커녕 불평부터 나온다. 평소보다 부쩍 속도를 줄이고 신경 써서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눈이 쌓인 곳은 얼어서 미끄럽고 염화칼슘을 뿌린 곳은 질퍽해서 미끄럽다.
그래서 오늘처럼 눈이 많이 내리는 것이 달갑지 않다. 겨울의 꽃이 눈임에도 불구하고 하얀 눈꽃으로 뒤 덮인 세상보다는 그저 보행이 불편하지 않음을 원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다. 낭만을 상실해 버린 것이다.
물론 나도 한 때는 눈 오는 걸 무척 반겼다. 오래전 추억이 되어버렸지만, 눈이 오면 어린아이처럼 그리고 강아지처럼 무턱대고 좋아했었다. 어느 겨울에는 눈이 내리지 않아 괜스레 서운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펑펑 내리는 눈에 내 눈을 고정하고 있으면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기분이 묘했다. 동화 속 세상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차원의 세계로 간 기분도 들었다. 늘 보던 풍경인데도 마치 이상한 나라에 홀로 떨어진 것처럼 새롭게 다가왔다.
그러고 보면 세상을 온통 하얗게 뒤덮는 눈은 나의 마음 한편에도 수북이 쌓였던 것 같다. 건조한 겨울 날씨만큼이나 메말라 버린 가슴에 어느새 스며들어 익숙한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어 버리는 마법을 부렸다.
다시 창문을 열었다. 쌓여가는 눈을 보며 오랜만에 마음의 문도 열어본다. 눈발이 창가에 그리고 가슴에 내려 쌓인다. 그래, 눈 내리지 않는 이상한 겨울보다는 조금 불편해도 이게 더 낫다. 그렇다고 너무 많이 내리지는 말고, 적당히 하얀 겨울이 되어주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