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가 되니 날짜를 잘 의식하지 않고 산다. 휴대폰을 매일 확인하면서도 액정 화면 속 날짜 부분에는 시선이 안 간다. 매일이 쉬는 날이니 쉬는 날을 확인할 필요도 기다릴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바로 어제, 며칠 만에 날짜를 확인했다. 2월 28일. 한치의 의심도 없이 오늘이 3월 1일이라고 생각했다. 숫자 하나차이, 실제로도 하루차이인 2월의 마지막 날과 3월의 첫날. 자정이 지나면 겨울 끝 봄 시작이 될 것만 같다.
당연히 오늘이 3월 1일 공휴일이라 생각한 나는 아내에게 뭐 할까 물어 보았다. 어딜 가도 사람이 붐빌 테니 맛있는 거나 사먹을까 말했다. 아내가 답한다. 출근한다고.
달력을 보니 오늘은 2월 29일이다. 머쓱해진 나는 괜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구글 캘린더를 켰다 껐다. 뉴스를 보니 정부가 오늘이 마지막 이라며 전공의들에게 복귀를 촉구하고 있었다. 29일이 확실하다.
지구의 공전주기는 정확히 365일이 아니다. 이를 보정하고자 4년에 한 번씩 하루를 더하는 것이다. 2월 달에 29일을 만들어 이를 윤일이라고 부른다.
보통 윤달과 혼동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원리는 비슷하나 둘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윤일이 포함된 달이 윤달이 아니다. 윤달은 음력 계산 시 보정을 위해 2~3년 마다 한 달을 더하는 데 사용된다고 한다.
복잡한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고, 어쨌든 오늘이 생각했던 그 날이 아님을 깨닫고나니 김이 빠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손해는 아니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어쨌든 2월이 하루 더 늘어난 것이고, 올해도 하루 더 늘어난 것이니까.
한 발 더 나아가 올해는 하루를 더 살고 내년을 맞이하게 되니 그만큼 나이가 늦게 드는 것이기도 하다. 이거야 말로, 개이득 아니겠는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게 세월인데 하루 24시간이 덤으로 주어졌다.
선물처럼 생긴 오늘을 어떻게 보낼까 잠시 고민하다 카페에 들렀다. 매년 봄이 오면 판매한다는 한정판 메뉴가 오늘 출시되었단다. 고민 없이 음료를 주문해 받아들고 구석에 자리잡고 앉아 한 모금 마셨다.
음료 위에 올린 크림 덕분인지 더 부드럽고 달콤하다. 맛있는 음료 또한 오늘이 내게 준 선물같이 느껴진다. 날짜를 세지는 않더라도 하루하루의 의미는 헤아리며 살고 싶다. 2월 29일 오늘이 모두에게 선물같은 하루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