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음을 사람들은 잘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적어도 나의 경우, 겉으로 보기에 별로 티가 나지 않기에. 그래서 보통은 묻지 않아도 먼저 밝히는 편이다.
주로 만나는 사람들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별 껄끄러움 없이 이야기하게 된다. 내가 직장에서 힘들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바로 이해하기도 하는데 어떤 이들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만큼 예전과 차이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의 감기라고 말하는 이 병에 대해 나도 오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얼굴은 핼쑥 창백해지고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 극단적인 이런 모습은 일상에서 보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의 중증이라면 입원치료를 받고 있거나 요양 중일 테니 말이다.
우울증 증상의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사람들 앞에서는 매우 멀쩡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증세가 없거나 약한 날의 나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우울 증세가 심한 날이라면 그 누구도 만나지 않는다. 가족이 아닌 이상 나의 그런 모습을 보기는 힘들다.
누군가는 집에만 있지 말고, 나가서 햇빛을 쐬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도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기분전환도 해야 한다고 한다. 그 누군가 중에는 나를 상담해 주는 의사 선생님과 상담가도 포함된다. 하지만, 이 병을 앓아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게 바로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내가 경험한 바로, 이 병은 항상 쭉 우울하기보다는 감정 기복의 폭이 심한 쪽에 더 가깝다. 쉽게 말해 롤러코스터와 같다. 감정의 오르막길을 올라 기분이 좋았다가도 금세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간혹 360도 회전하는 코스까지 만나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감정 소용돌이에 빠지기도 한다.
의사 선생님은 내 증상이 그렇게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아직은 치료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체감되는 정도가 꽤 크게 느껴진다. 최근의 경우가 그랬다. 딱히 원인을 설명할 수 없는 우울과 무기력들이 나를 괴롭힌 시간들이었다.
깊은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날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지구에서 가장 의미 없게 시간을 보내는 한 명을 뽑으라면 자신 있게 ‘저요’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그런 와중에도 잠시 괜찮은 롤러코스터가 상승하는 시간들이 올 때면 글을 썼다. 몇 번 안 되긴 하지만 마침 컨디션이 좋은데 시간도 맞으면 누군가를 만나기도 했다. 여전히 나에게는 꽤 힘을 내어야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조금씩 늘려가고 싶기는 하다.
마음대로 마음을 먹지 못함이 가장 힘든 부분이다. 마음이 강해지는 훈련이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은 매일 현관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정도의 용기다.
그 힘든 일을 쉽게 해내는 내가 되기를 바란다. 서성이듯 골목을 배회하며 시작하는 것도 좋겠다. 걷다 보면 언덕 아래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 해도 좋을 것이다. 그 집 단골이 되어 매일 출근 도장 찍듯 찾아가 같은 자리에 앉아 글을 쓰거나 누군가를 만나고 있을 나를 그려본다.
*사진출처: Photo by Ruben Valenzuela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