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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세곡 May 05. 2024

어린이날을 위한 '어른이날'

매년 어린이날이 돌아오면 드는 생각이 있다. 왜 어린이날은 있는데 어른이날은 없는가 하는 것이다. 이 무슨 멍멍이 소리인가 할지 모르지만, 진지하게 진심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5월이 가장 행복했다. 어린이날 때문이다. 5월 5일은 달력의 빨간 숫자 중에서도 유독 반짝거렸다. 


  그때는 매주 토요일도 오전 수업이 있었다. 아동학대에 가까운 주 6일 등교가 당연했던 그 시절. 합법적으로 하루를 쉴 수 있다는 것은 특권 아닌 특권이었다. 더구나 어린이날이라는 공식적인 명칭은 가슴이 웅장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나와 같이 어린아이들만을 위한 날이 존재한다는 건, 어린 내가 보아도 참 멋진 일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방정환 선생님의 이름 석자는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외워진 것 같다.


  오직 아이들을 위한 것들로만 가득 찬 날. 그것이 과거의 어린이날이었다. 극장은 ‘영구와 땡칠이’ 같은 어린이 영화로 특수를 누렸다. TV에서도 만화영화를 비롯한 어린이 프로그램들이 하루 종일 나왔다. 지금도 그렇지만, 놀이동산은 사람들로 엄청나게 붐볐다. 몇 시간씩 줄을 서야 놀이기구를 탈 수 있었으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서너 개 타면 다행이었다. 그뿐이랴. 오며 가며 차도 많이 밀렸다. 진을 다 뺄 수밖에 없어 부모들에게는 쉬는 날이 아니었다. 


  온 나라가 이 날 하루만큼은 아이들에게 올인했다. 그래서 나는 물론이고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에게 생일 못지않게 설레는 날이었다. 5월이 되기 며칠 전부터 손꼽아 기다리는, 내가 기억하는 어린이날은 그런 날이다. 오늘은 어린이날. 예전 같지 않은 날이 된 지 오래다. 내가 어린이가 아니니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꼭 그 이유뿐일까. 어린이날이지만, 주인공인 아이들로 가득 채워지지 않는 날이 되어버렸다. 


  출산율의 감소는 우리가 체감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심각하다. 지난해 합계 출산율은 0.72명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어린이날을 맞이해도 과거처럼 아이들의 목소리가 온 동네를 울리지 못한다. 때문에 ‘어린이날 특수’도 옛말이 되어 버렸다. 아이들 수가 줄다 보니 이제 극장은 아이들 영화만을 내걸지 않는다. 백화점이나 상점들도 마찬가지다. 어린이날 선물을 사려는 발길이 줄어 관련 이벤트나 행사도 눈에 띄게 줄었다. 


  이대로 간다면 어린이날은 그 명맥만 간신히 유지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공휴일에서 폐지되어 기념일 정도로 남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달력에서 더 이상 빨간색으로 빛나지 않는, 숫자 밑에 적힌 작은 글자를 자세히 보아야만 알 수 있는 그런 날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인식의 변화다. 단순히 애를 몇 명 나으면, 얼마를 더 줄게 가 아닌 것이다. 어린이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이때,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건 젊은 어른들이다. 소위 MZ세대는 역사상 가장 가난한 세대로 불린다. 낳지 않는 것보다 낳지 못하는 것에 가깝다. 설득 이전에 온전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물론, 지금의 젊은 세대들의 생각을 무조건 긍정하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너무 문제를 단순화하지 말자는 이야기다. 그러한 접근은 단편적인 미봉책만을 내놓게 할 뿐이다. 저출산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문제들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 만들어진 총체라 할 수 있다. 다방면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부작용만 더 양산할지 모른다. 세대 간의 갈등을 봉합하고 이해하려는 우리 모두의 노력이 우선 되어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을 넘어 어른들에게 더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을 낳고 기르게 될 ‘어른이’들의 삶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인 것이다. 출산이 개인과 가정, 사회의 기쁨이 되도록 진지하게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


  말로만 아이들이 우리의 미래라 하지 말고, 실질적인 대안과 지속 가능한 정책이 필요한 때이다. 어른들이 마음 편히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해낼 수 있는 날들이 올 때까지. 어린이를 위한 오늘 하루를 뺀, 모든 날들이 그러한 것들을 해내는 ‘어른이날’이 되기를 바란다.





*사진출처: Photo by Viet Hoan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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