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노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요즘이다. 20대에 사회생활을 시작하자마자 노후 준비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도 많다던데. 그렇게 따져보면 우리는 꽤나 늦은 준비가 아닐 수 없다. 40대인 이제 와서야 이런 고민을 시작하다니 참 대책 없는 부부다.
그래도 아내는 나보다 훨씬 낫다. 은퇴 이후의 삶을 어떻게 유지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아내가 먼저 꺼냈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올 초부터 그런 이야기들을 간혹 주고받았다. 그때만 해도 나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아내가 이번에 꺼낸 이야기는 개인연금을 따로 준비해야 하나였다. 그리고 이미 몇 군데 알아도 본 모양이었다. 꽤나 구체적인 이야기들이다.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일을 관두고 나서 현실 감각이 아무리 떨어졌다지만 너무 안일하게 살아왔나 하는 반성이 든다.
우리는 자녀가 없다. 아이가 없다는 건, 그저 둘이서 잘 먹고 잘 살 걱정만 하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노후 준비 역시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 왔나 보다. 큰 사고만 안 치면 두 식구의 삶은 어떻게든 살아지겠지 싶었던 게 사실이다.
실제로 같은 나이대의 자녀를 키우는 다른 부모들과 비교해 보면 그들보다 훨씬 더 마음으로 여유가 있는 듯하다. 현재 내가 일을 하지 않다 보니 총소득은 적은 편이지만 그럼에도 지출 면에서 우리가 덜 나갈 것이다. 양육비나 교육비가 들어갈 일이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노후 준비에 대해 너무 안일했다. 막연한 먼 미래의 일이라고만 치부해 왔다. 다시 생각해 보면, 자녀가 없기에 오히려 미래를 더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노인이 되어서 맞이할 만약의 사태, 이를테면 아내도 나도 경제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예상치 못한 큰일을 겪게 된다면 의지할 수 있는 자녀가 없다. 손을 벌리든 벌리지 않든 자녀의 유무는 천양지차와도 같을 것이다.
없어서 못하는 것과 있어도 하지 않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물론, 나와 아내의 성격상 자녀가 있다 해도 부양의 부담을 주지 않으려 최대한 힘썼을 것이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염치없이 의지하기는 싫어 어떻게든 준비했으리라 생각한다.
과거에 비해 평균 수명이 많이 늘어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과거라고 해봐야 고작 30~40년 전이다. 요즘에는 하면 오히려 욕먹는다는 환갑잔치가 그때만 해도 아주 당연했었다. 어렸던 내가 성인이 된 것뿐인데 평균 수명은 눈에 띄게 늘어 사회적 분위기와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사람의 수명은 계속 늘어나게 될 것이다. 세 자릿수를 채우고도 꽤 오래 더 살아야만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세상. 말로만 듣던 백세시대가 일상인 시대. 인구 고령화가 절정을 이룰 바로 그때, 우리 부부 역시 노년의 시기를 보내게 된다.
수명이 이렇게나 늘어가고 있는데 은퇴 나이는 아직도 60대 초중반에 머물러 있다. 정년 퇴직하고 반백 년 가까이 생존해야 한다. 어쩌면 은퇴라는 용어 자체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겠다. 생각할수록 참 만만치 않은 인생의 후반전이다.
그러한 세상의 도래가 인간에게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제대로 준비하지 않는다면 불행한 노후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내와 나 역시 은퇴 나이가 멀지 않았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40대의 우리가 아직 한창 때라고 바득바득 우겨보지만 고작 20년도 채 남지 않았다. 안 그래도 국민연금 고갈의 위험에 대한 뉴스를 몇 번 보았더니 더 불안해진다. 아내가 개인연금을 추가로 고려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물가상승을 반영할 때 노후에 국민연금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마저도 좋지 않은 전망들만 쏟아지니 추가 대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경기 침체는 장기화되고 있고, 잦은 기상 이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갈등 상황들은 우리의 삶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들이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어 이래저래 고민만 늘어간다.
어느덧 직장을 관둔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어떤 일을 시작할지 아직 결정은 못 했다. 무엇이 되었든 머지않아 일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조금이라도 정기적인 소득이 생기면 나 역시 노후 준비를 위해 적극적인 준비를 시작해야 할 듯하다.
젊은 인구는 크게 줄고 노인 인구는 늘고 있다. 우리 부부가 일부러 아이를 가지지 않은 건 아니지만, 결론적으로 인구 감소에 한몫을 더하고 말았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남은 생을 더 열심히 살아가야만 한다.
생존을 위해 더 오래 일해야만 하는 운명이 되었다. 어차피 일해야 한다면 단순히 돈벌이만을 위한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와 아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처럼 자녀 없는 노부부들이 주변에 꽤나 많으리라 예상해 본다. 불행 중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도와가며 서로의 짐을 조금씩 나눠질 수 있는 세상이길 꿈꾸고 있다.
우리 부부가 노인이 되었을 때 노후 대비가 얼마나 잘 되어 있을지 알 수 없다. 인생이란 생각처럼 되는 건 아니니까. 그럼에도 하루하루가 너무 빡빡한 삶은 아니기를 바란다.
가능하다면 우리를 위해서만 사는 일상이 아니었으면 한다. 이웃을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는 약간의 여유 있는 삶이길 기대해 본다. 그것이 우리가 노후를 제대로 준비하고자 하는 진짜 이유이기 때문이다.
*사진출처: 셔터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