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종류를 잘 못 마시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불안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주관적으로 그렇게 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으니 객관적으로 그렇다. 우울증과 불안 장애, 바로 내가 앓고 있는 병명이다. 그래서 약물 치료와 상담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금요일 오후는 어떤 약속도 잡지 않는다.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해야 하기 때문이다. 매주 금요일 오후가 되면 나는 차를 몰고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병원으로 향한다. 매주 방문한 지 꽤 되어서 그런지 문을 열고 들어서면 데스크에 계신 직원분들이 내 얼굴을 알아봐 주신다.
접수를 하고 잠시 숨을 돌리며, 물을 반 컵 정도 떠 놓는다. 먼저 상담부터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3시부터 50분 동안 해당 병원의 부설기관인 상담센터에서 배정된 상담사 선생님과 상담 시간을 갖는다. 한 시간 가까이 대화하려면 물은 필수다. 상담이 끝나면 의사 선생님을 뵙고 약을 처방받아 나오면 된다.
종이컵에 반쯤 담긴 물. 사실 나는 고작 이것 때문에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재작년부터 물이 잘 마셔지지 않았다. 물뿐만 아니라, 액체형태의 모든 음료를 꿀꺽 삼키는 것에 큰 불안을 느껴 잘 해내지 못한다. 마셔야 살 수 있으니 억지로 아주 조금씩 삼키기는 하지만, 한창 심할 때는 한 모금의 물을 넘기는데도 시간이 한참 걸렸다.
처음에는 내가 연하 장애라도 생긴 줄 알았다. 그런데 밥이나 반찬 같은 음식물을 먹고 삼키는 것에는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희한하게 물 종류만 잘 넘겨지지 않았다. 원래 다니던 단골 한의원에 이야기했더니 기능적 이상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관련해서 한의원에서 진료를 계속 받았다. 내과에서 내시경 검사도 받았지만 정상이었다. 몇 달이 지나도 회복이 지지부진하자, 한의원 원장님은 내게 조심스레 정신건강의학과에서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권해주셨다. 우울증이 의심된다면서. 워낙 오래 봐온 분이라 저항감 없이 그의 말대로 했다.
한 번도 상상해 보지 않았다. 정신과에 다니는 내 모습을. 찾아보니 내가 살고 있는 곳 주변에 정신과 진료를 보는 병원이 꽤 많았다. 그만큼 현대인들에게 정신질환이 흔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열심히 리뷰를 검색했고, 그중 한 곳이 마음에 들어 예약을 했다. 바로 지금 다니고 있는 병원이다.
다행히 원장님은 친절하셨다. 내가 불편을 느끼는 증상들에 관해 꽤 오랜 시간 이야기했다. 원장님도 공감해 주시면서 이런저런 말씀들을 해주셨다. 물 종류의 삼킴이 어려운 이유는 자율신경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원인은 기억하지 못하는 트라우마이거나 우울증일 수 있다면서. 생각보다 오랜 시간 치료를 해야 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반드시 괜찮아질 테니 걱정 말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자율신경 검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종류의 검사들을 받았다. 대부분이 문제 풀듯이 써야 하는 검사들이었다. 원장님의 문진과 나의 검사 결과를 종합해 볼 때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맞았다. 특히 나의 불안도는 타인보다 꽤 높은 수준이라면서 약물치료를 먼저 시작하고 후에 병원과 연계된 센터에서 상담치료를 받는 것도 한번 생각해 보라고 말씀해 주셨다.
내 안의 우울과 불안은 직장생활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당시 나는 회사에서 엄청난 염증을 느끼고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굳이 상담까지 받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직장 생활하면서 스트레스 안 받는 사람도 있나? 왜 나만 별나게 이런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당히 참으면 좋아지려니 막연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처방받은 약을 며칠 복용하니 눈에 띄게 증상이 호전되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며칠만 더 약을 먹으면 낫지 않을까 희망에 부풀어 올랐다. 진작에 올 것을 괜히 고생했네 라며 스스로를 질책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엄청난 착각이었다. 좋아지는가 싶더니 다시 나빠졌다. 그 뒤 수개월 동안 증상이 좋아졌다 나빠지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약물 치료의 한계를 느꼈다. 결국 나는 상담치료도 병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보다 나아질 수만 있다면 뭐라도 하고 싶었다. 그만큼 나에게 물을 잘 삼키지 못하는 증상은 괴로운 일이었다. 아주 어린아이들도 하는 물을 꿀꺽꿀꺽 삼키는 그 세상 쉬운 일을 나는 해낼 수 없다는 것.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고 그 기분과 감정은 고스란히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되어 증상을 더 악화시켰다.
입안에 물이 들어가면 식도가 꽉 막혀 물이 지나가지 못하게 막는 느낌이 든다. 당연히 물을 삼킬 때마다 부자연스럽고 긴장이 될 수밖에 없다. 목에 걸릴까 봐 혹은 기도로 넘어갈까 봐 겁이 나서 아주 소량의 물을 천천히 가까스로 넘겨야 한다. 그래서 알약을 먹을 때마다 힘들었다. 알약과 물을 같이 삼켜야 하는 행위는 나의 불안도를 더 높이 끌어올리기에 충분했다.
증상의 호전 여부와 부작용을 살피며 여러 차례 약을 바꿔나갔다. 부작용이 적으면서 효과는 높은 약을 찾아나가는 것이 치료의 중요한 단계인 듯했다. 상담 시간에도 몇 차례 깊이 있는 대화들을 통해 나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었다. 약을 먹는 것과 상담을 받는 시간들을 통해 차츰 내 안의 나를 돌보는 연습을 했던 거다.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이 시간들이 잘 지나가면 나의 내면은 더 건강해지고 단단해질 것이 분명하다.
나의 소원은 시원한 물 한 컵을 원샷해보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그 당연한 행동이 내 삶의 목표가 되었다. 고작 물 마시는 것에 이렇게 애쓰고 신경 써야 한다는 게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이런 내 모습도 그냥 받아들이면서 치료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불안도가 높은 나의 성향이 완전히 고쳐지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분명 좋아질 것이라 믿는다. 열심히 약을 먹고, 상담도 꾸준히 받으면서 도저히 삼키지 못하도록 내 목을 꽉 붙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고야 말 것이다. 내 안에 있는 삼키지 못하는 나를 만나 이야기를 좀 나눠야겠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잘 화해하고 싶다. 우울하고 불안한 내 속의 나를 만나 꼭 안아줘야겠다.
*사진출처: Photo by Anderson Rian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