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각 오전 11시 22분,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헌재 대심판정을 울리는 목소리.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렸던 말이었던가. 이 한마디를 듣기까지 무려 123일이나 걸렸다. 마침내 내란 수괴 윤석열에게 정의의 심판이 내려졌다.
작년 12월 3일 밤 이후, 국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고되고 추운 날들을 보내왔다. 국회 앞으로 달려간 성숙한 시민들, 국회의원들의 신속한 대처, 상부 명령에도 불구하고 소극적 복종으로 대응한 양심적인 군인들. 각자 다른 위치에 서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모두가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계엄을 해제해 냈다.
딱 거기까지였다. 당연히 일단락될 줄 알았던 사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한 것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당연하지 않은 것처럼 훼손되기 시작했다. 국민들은 이러한 현실을 믿을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하루하루 불안한 밤들이 이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잠을 설쳤다는 말을 했다. 이렇게 엄혹한 겨울을 또 겪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해가 바뀌어 AI가 보편화되어가고 있는 첨단의 2025년이 시작되었건만, 국민들의 시간은 그 날밤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반대로 윤석열 및 그의 추종자들이 보이는 태도는 갈수록 가관이었다. 헌법을 우습게 아는 윤석열 세력은 끊임없이 거짓 음로론과 가짜 뉴스를 생산해 냈다. 백번씩 백번을 양보하더라도 그의 편을 들 수 없어야 맞음에도 그들의 표현처럼 계몽이라도 되었는지 도무지 폭주를 멈추지 않았다.
민주 시민들의 시간이 멈추어 있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들은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똘똘 뭉쳐 광신도와 같은 모습으로 윤석열을 일관되게 옹호하면서 떠 받들었다. 그들 역시 그들 만의 시간에 머무르고 있었다.
저급한 정치인들은 이를 이용하기에 바빴다. 해묵은 이데올로기까지 꺼내 들어 양 극단으로 국민들이 더욱더 대립하도록 계속 부축이기만 했다. 정치나 이념의 문제가 아닌 분명 '정의의 문제'라고 아무리 피를 쏟아 내듯 말을 해도 그들은 듣지 않았다.
우리는 뼈 아픈 현대사를 거치면서 민주화를 이루어 냈었다. '정의'라는 단어 하나를 세우기 위해서 너무 많은 대가를 치렀다는 것을 우리 모두 같은 역사책을 보며 배워 왔다. 그런데 어떻게 헌법 정신을 짓밟고 불법 계엄령을 내릴 수 있었을까. 아직도 과거의 계엄령 때문에 받은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국민들이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데도 말이다.
윤석열이 파면되었으니 다시 우리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해야 할 때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민주적이고 정의가 살아있는 대한민국을 함께 세워 나가야 한다. 과거보다 나은 현재,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 되도록 다시 일어서고 또 일어서야만 한다.
윤석열로 인해 겪어도 이 땅에 힘겹게 심겼던 헌법 질서는 파괴되고 말았다. 경제도 파탄 났다. 외교는 물론이고, 내치는 말할 것도 없다.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을 회복시키는데 집중할 때다. 얼마나 걸릴지 그리고 힘들지 예상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수습은 국민들의 몫이다.
그렇기 때문에 파면된 것만으로 안심하거나 만족해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과거 박근혜 대통령 파면 이후, 이런 사태가 다시 생기기까지 불과 7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엄정하게 수사해야 한다. 단 하나의 불씨도 남지 않도록 말이다. 얼마 전 큰 피해를 남긴 대형 산불이 그러했듯 말이다.
파면 이후의 정국은 파멸되어 버린 대한민국을 소생시키는데 우리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 먼저, 오랜 시간 우리를 괴롭혀 온 이념 대립의 망령으로부터 해방되기를 힘쓰자. 재발 방지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 한다. 역사 속에서 이런 파국을 반복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한 겨울 얼음장 같은 광장 바닥에 나 앉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말이다.
갈 길이 멀기는 하지만, 윤석열의 파면 선고로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다. 이제야 봄인가. 이번 주말만큼은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모처럼 한숨 돌려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작년 12월 3일 이후, 정확히 123일 만이다. 안온했던 일상을 점차 되찾아 갈 수 있기를. 하나, 둘, 셋, 차근차근 한 걸음씩 떼면서 희망의 나라로 출발해 보자.
*사진출처: 오마이뉴스(사진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