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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심을 사람이 필요하다.

by 천세곡

해마다 식목일이 되면 생각나는 작품. 바로,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의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1953년 작)이다. 개인적으로는 애니메이션 영화로 먼저 접했다. 1987년에 캐나다의 프레데릭 벡이 제작해 이듬해 아카데미 최우수 단편 애니메이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국내외 정세가 어려워져 일상이 부쩍 삭막해진 요즘 더욱더 생각이 난다. 현재 유튜브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작품만큼은 자막이 삽입된 원작 버전보다 우리말 더빙판을 더 추천한다. 꽤 오래된 영상이라서 가능했던 것 같은데 차분한 성우의 내레이션이 작품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인간과 자연환경에 대한 내용을 어렵지 않게 담아낸 작품이다. 재앙적인 이상 기후가 계속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크다. 부담 없는 30분의 비교적 짧은 러닝 타임은 혼자 감상해도 좋고, 아이들과 함께 시청해도 좋다.


식목일에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실제 나무를 심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처지라면 이 작품 보기를 권한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내용은 말 그대로 계속 나무를 심어 가는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한 남자가 프로방스의 알프스 끝자락에 위치한 한 메마른 지역을 지나간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엘제르 부페'라는 한 노인을 만나게 된다.


부페는 양을 치면서 마을 주변의 황폐한 땅에 혼자 나무를 심고 있었다. 그 지역을 되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바친다. 주인공은 부페가 매일 나무를 심고, 심은 나무들이 자라면서 일어나는 변화들을 오랜 세월에 걸쳐 목격하게 된다.


점차 푸르고 생명력 넘치는 숲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경이롭다. 단 한 사람의 손길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럼에도 부페는 아무런 보상이나 인정을 바라지 않는다. 늘 나무를 심을 뿐이었다.


심지어 부페가 나무를 심는 동안 1,2 세계 대전이라는 큰 위기를 겪게 된다. 전쟁 통에도 끝내 숲은 살아 남고야 만다. 부페가 지킨 것이기도 했고, 숲 스스로가 자신을 지켜낸 것이기도 했다.


세상 일에 무심한 듯 살아가지만, 가장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일을 해나가고 있는 그였다. 겉으로는 고독해 보이는 한 노인에 불과하지만 묵묵히 씨를 뿌리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성스러운 느낌까지 든다.


전쟁이 끝나고 더 시간이 지나면서, '부페의 나무 심기'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처음 황폐했을 때 이곳은 몇 명 안 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서로를 죽일 듯이 미워하면서 사냥을 통해 근근이 버티던 곳이었다. 너무 삭막해서 생명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나마 남아있는 산 것들 조차 사라져 가던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숲이 울창해질수록 더 많은 종류의 나무와 식물들이 생겨났다. 갖가지 동물들이 모여들었고 시원한 샘물도 솟아났다. 과거에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면서 무너뜨렸던 집터 위에는 어느새 깨끗한 농가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자연이 선사해 주는 건강함에 매료되면서 행복함을 느끼게 된다. 웃음과 활기로 가득 찬 산골 마을이 된 것이다. 부페의 꾸준한 나무 심기는 땅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도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이 모든 것은 부페라는 한 사람이 해낸 숭고한 헌신 덕분이다. 세상이 혼란해지고 불타 갈 때도 그는 묵묵히 나무를 심고 가꿨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단순히 환경 보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 사람의 꾸준한 노력이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부페가 보여준 작은 노력과 인내는 죽음과 같은 처지에 놓인 세상을 다시 부활시키기에 이른다. 오직 신만이 할 수 있을 그가 해낸 것이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인간의 탐욕은 환경 파괴는 물론이거니와 재앙 수준의 이상 기후를 불러온 지 오래다. 함께 살아가기보다는 나만 살아남기 위한 이기심만이 가장 크게 작동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나무를 심을 한 사람'이 필요한 때다. 큰 일을 해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부페처럼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작은 노력과 인내로서 함께 일어서기를 힘쓸 사람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황폐해진 지금 대한민국 현실을 보면 더욱 그렇다.


2025년의 식목일이다. 우리는 얼마 전 끔찍한 산불 사고를 겪었고, 어제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큰 홍역을 치렀다. 다시 시작할 때이다. 산에도 우리의 마음속에도 씨를 뿌려 가꾸기를 결심하자.


각자가 뿌릴 수 있는 씨앗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잘 찾아보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꼼꼼히 살펴보자. 그리고 심자. 나무를 심는 것만이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이 공동체에 구원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믿는다.





*사진출처: '나무를 심은 사람' 유튜브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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