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공부는 다 때가 있다는 말이었다. 다시 말해 공부는 할 때 해야 되는데 학교에 다니고 있는 지금이 바로 그 때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 기회를 놓치면 크게 후회할 거라고도 했다.
공부에만 때가 있는 것은 아니다. 놀기에도 좋은 때가 있다. 나는 고등학생 때 공부보다는 노는 데 집중했었다. 자습시간에 선생님께서 잠깐 자리를 비우시면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교실이 떠나가라 시끄럽게 떠들었다. 도시락은 쉬는 시간에 까먹는 게 국룰이었고, 막상 점심시간이 되면 밥 대신 모래먼지 먹어가며 미친 듯이 뛰어놀았다.
물론, 모두 나와 같지는 않았다. 몇몇 학생들은 이런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성실히 공부를 해나갔다. 선생님이 있든 없든 집중했으며, 옆에서 아무리 시끄럽게 떠들어도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만의 페이스를 유지했다. 체육시간이 되어야 우리들과 어울려 뛰었을 뿐 그 외 불필요한 체력소모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잰걸음으로 학원을 향해 가버렸다.
대놓고 놀지도, 열심히 공부하지도 않는 제3의 부류들도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도 무언가에 집중하기는 했는데 다만 그게 학교 공부는 아니었다. 이를테면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서 하루 종일 만화를 그린다거나 헤비메탈 음악에 빠져 필통을 손에 쥐고 일렉기타 운지를 연습하는 그런 친구들이었다. 이들은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나와 비슷했고, 집중한다는 점에서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친구들과 비슷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가 같은 시기를 지나는 듯했지만, 사실은 각자의 생각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을 지나가고 있었던 것 같다.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책을 펼쳐 놓고 있었을 뿐, 우리의 관심사는 모두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이런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고, 떠밀리듯이 수능이라는 하나의 관문만을 통과하기 위해 그저 앞으로만 가야 했다.
지금의 상황은 예전에 비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기는 하다. 교육과정도 변했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열아홉 살 안팎의 학생들을 평가하는 중심에는 여전히 수능이라는 큰 시험이 우뚝 서있다. 해마다 이때만 되면 온 나라가 수능 때문에 떠들썩 해지는 현실이 안타까운 이유이다.
수능은 학창 시절의 공부와 학습능력에 대한 평가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우리나라 교육에서 대학입시가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높고, 열기 또한 뜨겁다 보니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보일 뿐이다. 결과를 떠나서 그들은 모두 수고했고, 박수와 응원을 받기에 충분하다. 고작 하루의 시험 결과에 따라 등급이 결정되는 것도 속상한데, 인생마저 등급 매기듯이 낙인찍는 것은 정말이지 안될 일이다.
공부해야 할 때, 공부 대신 다른 무언가에 시간과 마음을 쏟았다면 그것도 충분히 괜찮다. 그 몰입의 시간들은 언젠가 이력서의 중요한 한 줄이 되어줄 수도 있다. 혹여 너무 놀기만 해서 후회된다면 그 역시 좋은 경험이다. 열심히 놀아본 사람이라면 무엇을 해도 열심히 할 수 있을 것이기에 뭐든 시작해보면 된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때가 있기 마련이고, 그때가 오거든 아껴두었던 열정을 잘 태워내면 된다.
수능 점수로 인해 대학은 달라지겠지만, 그것으로 인생마저 달라질 것이라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시험의 결과가 좋든 나쁘든 그들의 인생에 남은 시간만큼이나 많은 기회들이 있다. 같은 듯 다른 때를 지나고 있는 청춘들이 눈앞에 닥친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면서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지도, 자신에게 너무 실망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자기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나서는 여정의 시작이 되었으면 한다. 누가 뭐라 하든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가 인생의 주인이 되어가는 그런 때가 되었으면 좋겠다. 수능 말고, 열아홉 그대들의 인생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Photo by Nguyen Dang Hoang Nhu on Unsplash
Photo by Jed Villejo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