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언어를 배우는 시간

소통이 잘 되는 사회를 바라며

by 천세곡

사람은 통해야 산다. 숨이 통해야 살 수 있고 소통이 되어야 답답하지 않다. 만일 자신이 알지 못하는 언어를 구사하는 외국인과 하루 종일 같이 있어야 한다면 그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럴 때 반드시 통역이 필요하다.


일을 하다 보면 유독 말이 잘 안 통하는 사람들이 있다. 알아듣게 충분히 설명한 것 같은데 전혀 말귀를 못 알아먹는다. 분명 서로 같은 언어로 말을 하고 있는데 '내 말이 외국어로 들리나?'라는 생각까지 든다. 진짜 누가 통역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어차피 일로 만난 사이니까 굳이 엮이지 말자고 마음먹어보지만 소용이 없다. 업무를 하려면 공적인 대화는 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상대방이 농담을 던진다거나 사적인 안부라도 물어오면 반응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 사람과의 대화는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나를 큰 장벽에 부딪히게 만든다. 외국 여행할 때 느끼는 언어의 장벽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사람들과 대화를 섞다 보면 음료 없이 고구마 5개쯤 먹은 것 같은 답답함이 명치를 짓누른다.


답답함은 해소되지 못한 채 뭉쳐 있다가 짜증으로 바뀌게 된다. 도대체 왜 이렇게 못 알아듣는 것인지 묻고 싶어 진다. 이 정도 되면 그 사람과의 대화만 싫은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가 싫어지기 시작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해왔던 거의 유일한 방법은 먼저 말을 걸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말을 걸어온다 해도 짧게 핵심만 대답하고 오로지 대화를 계속 이어가지 않는 데 집중했다. 그에게 영향을 받지 않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혼이라고는 1도 찾아볼 수 없는 AI처럼 대답만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한다고 상대방이 바뀌는 것도 아니었으며, 나의 내면도 생각처럼 평안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무슨 로봇이라도 된 것처럼 마음은 더 삭막해져만 갔다.


소통이 잘 되지 않는 그 사람이나 소통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나나, 둘 다 소통이 안 되는 사람인 건 마찬가지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 사이에도 얼마든지 서로의 언어가 다를 수 있음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서로에게 통역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사람 사이의 소통에 있어서 제 3자가 대신 통역해 줄 수는 없다. 상대방의 언어를 직접 배워 스스로가 통역자가 되어야 한다. 소통에 관한 좋은 책과 세미나들이 도움을 줄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각자가 실전에서 몸소 익혀내야만 한다.


나의 언어를 상대방이 알아듣기 원하면서, 정작 나는 상대방의 언어에 대해 관심조차 없다면 소통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 타인의 언어를 배울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남 탓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소통이 지독히도 안 되는 사람은 아니었는지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주변에 나와 유독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쩌면 그들이 먼저 나의 언어를 익히고 배워서 말을 걸어온 것인지도 모른다. 말이 통하지 않을 때 필요한 것은 소통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소통을 하겠다는 다짐이다.


사회도 통해야 산다. 개인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소통은 매우 중요하다. '타인의 언어'를 배우는 시간들은 분명 우리로 하여금 더 잘 통하게 해 줄 것이다. 답답한 우리 사회의 숨통도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질 때 시원하게 뚫릴 수 있다.


Photo by krakenimage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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