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라이프의 시작은 여행으로부터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막연한 동경 같은 것이 있었다. 따라해 보겠다며 물건 몇 개 버려보기도 했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포기하고 그냥 이대로 살아야겠다 싶었는데 기회는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지난주에 3박 4일 동안 제주도로 출장을 다녀왔다. 짐을 싸야 하는데 고민이 되었다. 집에 하나 있던 캐리어가 너무 낡고 크기도 컸기 때문이었다. 새 캐리어를 사볼까 알아봤지만 괜찮은 것들은 가격이 꽤 나갔다.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이 아니라 구입하기가 망설여졌다. 어쩌다 한번 쓸지도 모르는 물건에 거금을 지출해야 한다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과감히 캐리어 구입을 포기하고, 장롱 속에서 백팩을 끄집어내었다. 그나마 가진 것 중 가장 큰 녀석인데도 4일 동안 머무를 짐을 가방 하나에 다 넣어야 된다고 생각하니 왜 이리도 아담해 보이는지. 날씨도 쌀쌀해져 가지고 가야 할 옷들이 두툼해 챙겨할 짐들의 부피가 꽤 컸다. 백팩을 포기하고 다시 캐리어를 알아볼까 잠깐 생각하기도 했지만, 왠지 모를 오기에 다시 짐들을 추려보기 시작했다.
백팩의 크기를 늘릴 수는 없으니 짐을 과감하게 줄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속옷과 양말만 날짜수대로 챙겼고 그 외의 옷들은 최소한의 것만 가져가기로 했다. 온도차를 고려해 점퍼는 입고 가는 경량 패딩 외에 바람막이 하나 넣었고, 바지도 청바지 하나만 챙겨 갔다. 당연히 세면도구나 화장품은 샘플 위주로 넣었다.
전에는 캐리어에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서 보조 가방까지 들고 갔던 출장길이었다. 짐을 많이 챙겼던 이유에는 완벽주의적인 성격도 한몫했었다. 여행이나 출장에 필요한 물품은 단 하나도 빠뜨리고 싶지 않은 마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필요할 수도 있는 물건들까지 죄다 가져가야 속이 시원하고 안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백팩을 선택하니 정말 꼭 필요한 것들만 챙길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물건들은 여지없이 제외해야만 했다. 정말 이렇게만 가져가도 되나 싶었지만 걱정할 만한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동안 뭘 그리 많이도 이고 지며 싸들고 다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꼭 필요한 것들만 넣었더니 백팩 하나에 다 들어가고도 오히려 여유가 남았다. 다음에는 짐을 더 줄여서 조금 더 작은 백팩을 가지고 떠나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캐리어 사는 것이 아까워 억지로 해본 미니멀 라이프 여행 컨셉의 출장이었지만 꼭 필요한 것만 챙기는 좋은 연습이 된 것 같다.
여행길을 나서며 짐을 너무 완벽하게 꾸리려고 애쓰지 않는 것. 인생길에서도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너무 잘 해내고 싶은 욕심과 완벽하게 준비하려는 부담감으로부터 가벼워질 필요가 있다. 짐을 완벽하게 준비한다고 해서 여행이 꼭 완벽해지는 것은 아닌 것처럼, 삶의 여정도 욕심을 부려 많은 것을 채워 넣는다고 꼭 풍성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는 간편하게, 때로는 여유를 가지고 가볍게 가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여행이든 인생이든 그 길에서 얻게 될 가치 있는 것들을 담아 넣을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여행이야말로 '미니멀 라이프'를 연습해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아닌가 싶다. 여행 짐을 줄여보면 인생 짐을 줄일 수 있는 용기도 생긴다. 여행도 인생도 짐은 가벼울수록 좋다.
*Photo by Tamas Pap on Unsplash
*Photo by 천세곡 "비행기 안, 내 옆자리는 백팩 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