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수호
돌이켜 보면, 어린 시절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데 별다른 노력이 필요 없었던 것 같다. 오늘 만난 친구와 내일도 만나고 모레도 만날 수 있었고 다 함께 신나게 놀았으니 말이다. 싸우지 않는 한, 애쓰지 않아도 친구사이는 자동으로 지속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애써 연락을 취하고, 특별히 날을 잡아야만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어릴 때와는 다르게 나이가 들어갈수록 서로가 점점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친했어도 친구사이가 저절로 유지되는 법은 없다. 의식적으로 기억을 해내고 연락을 하며 안부를 물어야 한다. 이렇게 챙기지 않으면 관계는 이내 소원해지기 마련이다.
노력하지 않으면 친구관계가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불과 얼마 전에서야 깨달았다. 바쁘거나 번거롭다는 이유로 연락과 만남을 미룬 대가는 컸다. 한 때 가까웠던 친구들 중 대부분이 이제는 연락을 거의 주고받지 않는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앞으로 친구들의 경조사를 더 잘 챙기고 가능하면 직접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경조사를 잘 챙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소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물론, 그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기회도 되기 때문이다.
특히 장례식은 더욱 그렇다. 슬픈 일을 당했을 때 곁에 있어 주는 것이 지금의 내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다. 퇴근 후 쉬고 싶은 마음도 들고, 먼 거리를 다녀오는 것이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인연을 이어가고 지켜내려면 어느 정도의 자기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누군가는 이익을 얻고자 인맥관리 차원에서 경조사에 참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소수일 것이다. 나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소중한 사람과의 인연을 지켜내고 싶어서 그 자리에 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청첩장이나 부고장은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사람을 다시 한번 소중히 대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준다. 인연은 저절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소중할수록 애써야 이어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경조사에 참석하는 것은 인맥관리가 아니라 인연수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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