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역주행 말고 정주행으로

브레이브 걸스의 정주행을 기다리며

by 천세곡

근래에 가수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노래가 역주행으로 인기를 끌었다. 개인적으로 가요계 역주행하면 브레이브 걸스(이하 쁘걸)의 '롤린'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코로나가 한창 기승이던 시절, 그녀들이 보여주었던 인기 쾌속질주는 많은 이들에게 긍정 에너지가 되어주었다.


발매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노래가 시일이 지난 후 갑자기 큰 인기를 끌게 되는 것을 역주행이라고 말한다. 유튜브에서 역주행이라는 검색어를 치면 쁘걸의 '롤린 댓글 모음 영상'이 아직도 상단에 노출된다. 그만큼 '롤린'은 역주행의 상징과도 같은 노래다.


자주는 아니어도 철 지난 노래의 역주행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늘 있어왔다. 다만, 쁘걸의 역주행은 뭐랄까? 가요계의 판을 확 뒤집어 버린 사건이었다. 대형기획사 시스템과 자본의 힘이 아닌 순전한 팬심으로 정상을 밟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발매된 지 무려 4년(당시 기준)이나 지난 노래로 말이다.


역주행 이전까지만 해도 쁘걸은 거의 무명가수에 가까웠다. 인지도가 거의 없는 대부분의 아이돌 가수들이 그러했듯 그녀들도 군부대 위문공연을 위주로 스케줄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자존심 상해하며 인상 쓰고 대충 시간만 때우고 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들은 항상 무대에 진심이었다.


그 마음이 닿았는지 군장병들 사이에서만큼은 높은 인기를 얻었다. 가식적이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인성마저 갖춘 아이돌이라는 칭찬도 따라다녔다. 국방의 의무를 위해 자신의 무대를 떠나 부대 안에 머물러야만 했던 수많은 청춘들. 그들은 가장 힘들었던 시절을 쁘걸의 무대를 보며 힘을 낼 수 있었다.


전역 후 이제는 어엿한 사회인이 된 그들이 쁘걸을 잊지 않고 기억해 냈다. 예비역들은 자신들을 위해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와주었던 그녀들에게 은혜 갚은 까치가 되어주었다. 무시무시한 병력의 규모로 결집해 유튜브 영상에 댓글을 달면서 역주행 신화를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온전히 팬들이 만들어준 역주행은 놀랍다 못해 경이로웠다. 팬과 가수가 마치 존재와 존재로서 만나 빅뱅을 일으킨 것만 같았다. 아직 빛을 보지 못한 가수의 고군분투와 팬들의 응원은 한 번도 제대로 꽃 피우지 못한 청춘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러한 서사를 알기에 며칠 전 발표된 쁘걸의 해체 소식은 너무나도 아쉽다. 해체의 가장 큰 이유는 역주행의 인기를 제대로 이어가지 못한 것에 있는 듯하다. 이후 발표된 음원이 생각처럼 흥행하지 못한 데다가 코로나로 인해 활동에도 제약이 많았다.


거기에 소속사의 제대로 된 기획과 운영, 홍보가 뒷받침되지 못한 것도 한몫했다. 충분히 공을 들여 후속 앨범을 준비했어야 하는데 마음이 급했는지 컨셉이나 의상 등에서 논란이 많았다. 앨범이 나올수록 성적이 저조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역주행으로 뜨겁게 불붙은 인기의 속도를 제대로 따라가지도 지켜내지도 못한 꼴이 되었다.


아무리 팬들이 멱살 잡고 역주행시켜 놓아도 소속사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해주지 못하면 그 인기를 이어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를 비롯해 많은 팬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멤버들의 땀과 노력도 알기에 안타까움이 크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무대 위에서 진심을 다해 주었던 쁘걸. 그 모습을 보면서 자신만의 무대를 갈망했던 많은 청춘들. 서로가 서로에게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기에 아직은 조금 더 그녀들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할 것이다.


역주행 신화가 일어난 지 거의 만 2년이 되었다. 소속사와는 이별일지라도 팬들과는 이별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그녀들의 건승을 기원한다. 이번에는 역주행 말고, 정주행으로.




사진출처: 나무위키 검색 "브레이브 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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