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있는 것 자체가 분에 넘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차를 사는 건 엄두조차 내지 못하던 시절에 차가 생겼다. 지금 생각해도 순전히 행운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지인이 타던 오래된 중고차를 싸게 넘겨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저렴한 중고 경차였기 때문에 내 손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른 차들에 비해 유지비가 얼마 들지 않았고 공영주차장이나 통행료 할인은 물론 세금도 쌌다. 무엇보다 경차카드로 주유 시 연간 유류세 지원 혜택이 있었는데 이게 상당히 쏠쏠했다.
그렇게 장만한 03년식 옥색 마티즈(일명 옥티즈)는 인생 첫 차였다. 잔고장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연식이 오래된 중고차치고 꽤 오래 버텨주었다. 한 3년 정도 타자, 옥티즈는 수명을 다했다. 그 옥티즈를 반납하는 조건으로 할인을 받아서 새 차를 구입했다. 그때 새로 산 경차를 지금까지 타고 다닌다.
여러 선택지가 있었지만 그 당시에 또 경차를 선택했던 이유는 무엇보다 실용적이라는 점을 포기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전히 내 형편에는 경차가 딱이라는 생각에도 변함이 없었다. 차가 너무 좁아서 뒷좌석에 누군가를 태워야 할 때 빼고는 딱히 차 자체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이런 나에게도 강력한 기변 욕구가 올 때가 있다. 더 성능 좋은 큰 차를 사고 싶어지는 것이다. 도로 위의 무법자들을 만났을 때가 그러하다. 무턱대고 깜빡이도 켜지 않고 위험하게 끼어드는 그들을 마주할 때면 차를 키우든, 몸을 키우든 둘 중 하나는 업그레이드하고 싶어 진다.
무법자들이 꼭 경차만 콕 집어서 노리는 것은 아닐 테지만, 확실히 작은 차를 운전할 때 더 위협이 느껴진다. 내 차가 아닌 회사 차를 운전할 때도 많은데 그때는 확실히 다르다. 주관적인 경험일 뿐이지만, 거의 10년 가까이 겪다 보니 나에게만큼은 무시 못할 데이터가 쌓였다.
운수 없는 날은 이런 차들을 여러 번 만나기도 한다. 참는 것도 한두 번이지 위험한 상황이 거듭되면 나도 모르게 분노가 차오르곤 한다. 숫자욕과 동물욕이 성대를 치고 나올 태세다. 이럴 때는 정말 내 차가 '경차'가 아니라, '경찰차'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매번 다른 무법자들을 만나야 한다는 현실은 암울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내가 먼저 방어와 양보를 하는 것뿐이다. 매너 운전을 이렇게 마지못해하고 있는 내가 좀 부끄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솔직히 말해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살고 싶어서 하는 것이기에.
경제적 혜택이 많은 반면 경차 운전자로 살아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다. 차가 있는 것 자체가 분노에 넘치는 일이 되어버렸다. 오늘도 마음을 굳게 먹고 운전대를 잡아본다. 언제, 어디서, 누구든 들어오기만 해 봐라. 다 참고, 양보해 줄 테니. 이것이 내가 경차 운전자로 살아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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