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씻으니 쓸 수 있었다.

by 천세곡

샤워는 내가 공을 많이 들이는 것 중 하나다. 절대로 대충 하는 법이 없고 늘 진심을 다한다. 하루를 잘 마무리하기 위한 관문이자 의식이며, 나의 최선이다.


가끔 샤워를 오래 할 때가 있다. 욕조에 몸을 담그는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샤워만 하는 것인데 평소보다 두 세배 더 시간을 들인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날씨가 무척 더운 하루였다. 그래 봤자 여름이 되고 싶은 봄일 뿐이지만, 한낮에는 땀방울도 제법 떨어졌다. 늦은 저녁 집에 돌아와 보니 온몸이 끈끈해져 있었다.


끈적이면 끈적일수록 샤워할 때의 쾌감은 더 커진다. 마치 며칠 동안 씻지 못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구석구석 꼼꼼히 닦는다. 비누 거품으로 온몸을 문지르다 보면 다른 존재로 변화되어 가는 듯한 착각까지 든다.


공들여하는 샤워의 과정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순간은 비누칠을 마치고 헹굴 때이다. 쏟아지는 물줄기를 온몸과 마음으로 반갑게 맞이한다. 쌓인 피로와 온갖 먼지들. 거기에 피. 땀. 눈물도 함께 흘려보내다 보면 영혼까지 깨끗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유독 샤워할 때 글감이 잘 떠오른다.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갈피를 못 잡을 때가 많은데, 벌거벗은 채로 샤워기 앞에 서면 써야 할 것들이 생각날 때가 있다. 나에게 있어서 샤워는 단순히 몸을 씻는 것만이 아니라, 글을 쓰기 위한 좋은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사람들이 신께 기도를 드리기 전에 목욕재계 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육체를 깨끗하게 하는 행위를 통해 마음과 영혼까지도 정결히 하고자 함은 비단 무속적인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기도 역시 신 앞에서 낭독하는 글이었을 테니 말이다.


내가 써내는 글들은 바람과 다짐들을 많이 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기도문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것은 나에게 거룩하고 정결함을 위한 행위다. 어쩌면 내가 샤워를 성실하게 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잘 씻고 나면 분명히 더 잘 쓸 수 있게 된다.




*사진출처: Photo by Victoria Alexandrov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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