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by 두루

올해 상반기의 내 테마는 명쾌하다. 테니스.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도 아닌데도, 발톱에 멍이 들거나 빠져있다. (테니스화는 반드시 한치수 크게!) 굳은살은 잘라내도 금방 또 수북히 올라온다는 걸 처음 체험하고 있다.


종아리가 튼실해졌다. 종아리가 튼실해졌다면, 허벅지는 무쇠가 되고 있다. 올해 초 말벅지를 가지고 싶어서 헬스 피티를 시작했는데, 아침엔 스쿼트 주말엔 테니스의 콜라보일까. 허벅지로 장수를 측정한다면, 나는 일단 장수 확정일 듯하다.


팔과 어깨는 어떤가. 포핸드 스윙에 더 힘을 가할 수 있다면, 그만큼 전완근에 근육이 더 붙었다는 의미다. 전완근과 손목에 근육이 붙다보니, 집안일을 하는 게 갈수록 더 수월해진다. 겨울 이불은 무거우니 오빠나 엄마한테 먼지털이를 맡기곤 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진 정도?


왜 이렇게 테니스에 열중할까 자문해본다면,

우선 나는 시간이 많다. 심심하다. 에너지를 집중할 무언가는 항상 필요했다. 이번엔 그 대상이 테니스로 옮겨온 것이다.


그런데 왜 테니스인가?

어렵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이러 저러하게 잘난 내가, 이까짓 거 하나 제대로 못배우겠나 싶은 마음에 몇 달 꾸준히 했는데, 어라 정말 못하겠는 거다. 운전할 때와 비슷하다. 하나님이 내겐 운전하는 은사를 주시지 않은 거라며 거의 울듯이 운전연습을 하던 때가 자주 기억나곤 하다. 하지만 지금 나는 사방팔방을 아반떼와 혼연일체가 되어 누비고 다닌다.


어딘가에 합격했다거나 무슨 점수를 받았다거나 하는 것들은 내게 더이상 과거의 훈장이 아니다. 이제 그것들은 빛을 바랬다. 되돌아보면 족히 이십년은 어디에 합격하고 점수를 받는 행위에 매달려왔다. 뒤돌아보면, 막막하고 어려웠던 하나 하나의 고비들은 꾸준히 모습을 달리하고 늘 존재했다. 그저 일상이었던 것이다.


운전이나 달리기나 테니스, 이런 것들은 내 평생 해보지 않았던 종목들이다. 내 영역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러다보니 이런 것을 달성하는게 지금은 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라고 하지만, 사실 테니스는 주말뿐. 나는 평일 온종일 일 생각만 하고, 일만 하고, 일을 더 잘할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이조차 평생을 해온 일상적인 사고 과정이기에 스스로 주목하지 않을 뿐이다.)


테니스는 어렵다. 공부나 일은 남들 안보는 곳에서 혼자 묵묵히 시간을 보낸 뒤 합격증서나 성과로 증명할 수 있지만, 테니스는 여기저기 내 못난 모습을 천하에 드러내야만 한다. 게임에 참가하여 맥을 끊어놓고, 민폐를 끼쳐야만 한다.ㅠ


그러다보니 더 열심히 해서 다음엔 민폐 안끼쳐야지 라는 마음을 즉각적으로 먹게되고


그러다보니 더 열심히 게임에 참가해서 또 민폐를 끼치고..


그러다보면 약간은 늘어있는데, 그게 결코 괄목할만한 수준이 아니다.


그런데 민폐를 끼치더라도 너무 재미가 있다. 폐가 더이상 기능을 못할 때까지 숨을 헉헉 대고, 다리의 근육이 터질 것처럼 순간적으로 공을 향해 집착하여 달려간다.


내 몸에 이런 기능이 있었는지도 모를 그런 순발력이나 동체시력, 볼 컨트롤, 게임 전략 이런걸 하는게 참 재미있다.


테니스를 2시간 치고 나면, 물을 2리터 먹고, 땀을 1리터 정도 흘린다. 티쳐츠고 속옷이고 바지고 다 비를 맞은 것처럼 젖어 있다. 양말이 축축하고, 땀을 닦은 수건조차 젖어있다.


그렇게 땀을 쏟아내고 나면,


아 역시 테니스는 재밌어.


라는 말이 그냥 절로 나온다. 그래서 테니스는 아무랑이나 쳐도 괜찮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그저 볼만 쳐도, 볼이 재미를 주기 때문에 상관없다.


오늘은 오전 테니스클럽이 우천취소가 되어 테니스를 못칠 뻔 했다. 다행히 저녁 테니스를 잡아서 한시간 후에 치러 갈 예정이다. 9월 예정인 텝스 공부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새 테니스화를 사고, 모자와 그립 테이프도 사고, 하루종일 침대에 누웠다가 일어나 테니스 일기를 쓰고 앉았다.


잘 치고 싶다. 이렇게 뭔가 주절주절 대는 것은 별루다. 이 시간에 서브 영상이라도 한번 더 봐야 하는데!


테니스도 수험 생활처럼 하는 나다. 인생이 수험이다. 그런 내게 달성이 매우 어려운 과제인 테니스는 참 적합한 운동이다.


게다가 테니스는, 한번 약속을 하면 웬만하면 지켜야만 한다.

의욕돋아 이것저것 약속을 벌려 놓고 나서 막상 나가려니 귀찮은 경우에도, 취소할 수가 없다. 민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단 약속을 잡아 놓으면, 테니스는 하러 나가게 되어 있다. 지금도 살짝 귀찮지만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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