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휘둘리지 않는 개인이 되는가를 읽고 / 홍대선 지음
철학자에 대해 찾아보고 읽기를 좋아했다. 괜히 있어 보이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과연 인간에 생각에 영향을 미쳤던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사실 이 책은 내용을 미리 알고 읽기 시작한 건 아니고, 집에 있는 책 다 읽기 목표로 걸린 책이었는데,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철학자 6인의 삶과 철학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데카르트, 스피노자,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 니체
이 중 굳이 선택한다고 했을 때, 스피노자다. 스피노자에 대해 알려면 그의 가문에 대해 알아야 한다. 고향은 스페인 유대계로 당시 보수적인 스페인에서 추방되어, 여러 나라를 거쳐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고, 상공업의 발달을 목적으로 유대인을 수용한 네덜란드에 정착한 상인 가문이다. 스피노자는 17세기 1632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부유한 집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스피노자의 나이 21살 때 아버지와 형이 폐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스피노자는 렌즈 세공 노동을 통해 생계를 꾸렸다.
당시 네덜란드에 정착한 유대인들은 내부 결속을 위해 극우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유대교 커뮤니티를 위해 랍비를 원했고, 똑똑했던 스피노자에게 유대교 공동체가 랍비로서 교육을 시켰다. 그렇지만 스피노자의 사상은 정반대로 유대교의 야훼를 믿지 않고, 남성 인격체로 인간사의 개입하는 인격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스피노자는 유대교에서 제명과 추방을 당했다. 스피노자는 자신의 철학적 소신을 위해 감수해 냈다. 그렇지만 적개심을 가지진 않았다.
"나는 인간들의 행위에 웃거나 울지 않으머, 또한 증오하지도 않는다. 다만 이해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동의한다. 스피노자는 자신의 근본인 유대교, 유대인 커뮤니티에서 부당한 대우를 계속 받았다. 그렇지만 스피노자는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회가 살만한 곳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자기감정의 먹잇감이 되는 사람은 스스로의 주인이 아니다."
"슬퍼하지도 조롱하지도 마라, 분노를 키우지도 마라, 그러 이해하라, 이해하려는 노력은 미덕의 처음이자 전부이다."
스피노자에게 개인주의자와 사회공동체주의는 하나며, 개인의 자유와 사상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피노자는 1,670년, 38살에 신학정치논고를 출판했다.
스피노자는 유일신, 인격신을 믿지 않고 범신론을 믿었다. 범신론은 모든 사물에 신성이 깃들어 있다는 의견이다. 데우스 시베 나투라 신은 곧 자연이란 뜻으로 스피노자의 철학을 상징한다. 신이란 철학적, 언어적으로만 존재한다고, 신은 곧 시공간 전체이다.
스피노자는 전 유럽의 비난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고독한 개인으로 지냈다. 스피노자는 1,674년 필생의 역작 에티카를 완성하고, 1,676년 폐병으로 죽었다. 교회에 안치된 ‘악마의 하수인’ 스피노자의 시신은 도난당했다.
스피노자의 윤리, 철학
에티카는 인간을 바닥까지 떨어트린 후 회복시킨다. 그래서 인간 윤리 최후의 보루라 불린다. 생의 의지, 살아있으려는 동력 코나투스(Conatus), 코나투스로 인해 아페티투스(appetitus)라는 욕망이 생긴다. 인간은 지능이 있기에 욕망이 욕구인 쿠피디타스(cupiditas)로 진화한다. 인간은 욕망이 아닌 욕구가 있기에 ‘자아실현’이 가능하다.
다음으로 선과 악의 개념이다. 스피노자는 보편타당한 선과 악이 과연 존재하는가에서 시작한다. 무엇이 선이고 왜 그런지를 설명하는 게 아니라 사유의 결과가 자연스럽게 증명이 되어야만 실제로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는 게 스피노자의 증명법이다. 따라서 스피노자는 선악은 상대적이며,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간은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저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으며, 이성을 가지고 욕구, 쿠피디타스를 감지한다. 인간은 이성을 지녔지 때문에,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그저 운 좋은 동물이다.
스피노자는 인간은 최대한 행복을 추구하면 그만이라, 얼핏 보면 윤리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도 아니고, 그저 동물이다. 그저 자유로운 시민이 있다. 따라서 현대 국가관의 완성이자 근대 서양 시민 윤리의 근간을 스피노자라고 한다.
스피노자는 국가는 조화, 균형, 관용을 추구해야 하며, 이런 점에서 인간은 권리와 책임, 의무의 균형을 가지고 살아야한다. 국가란 모든 개인이 나름 최대한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 수 있도록 하고, 필요할 때만 간섭하는 심판이어야 한다.
에티카는 선하게 살아야만 한다는 보편적인 근거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시민사회’를 결론으로 한다. 사회계약을 맺은 상태 이기적인 개인이 적당히 타협한 상태를 말한다. 여기서 가난으로부터의 자유도 자유이기 때문에 스피노자는 ‘복지국가’를 꿈꿨다.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국가도 사회도 윤리도 모두 거래일뿐이다. 타인의 욕망을 존중함으로써 자신의 욕망도 인정받는 거래가 필요하다. 이순신은 우리나라에겐 영웅이지만 일본에게는 아니듯이.
철학을 하는 건 사는 법을 연습하는 것이며, 우리는 이기적이고 추악하면서도 얼마든지 ‘에티카’를 발휘할 수 있다. 동료 시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만 있으면 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스피노자는 자신이 윤리학의 최종 보스임을 알고 있었다.
스피노자의 철학이 가장 이해가 잘되면서 공감이 갔다. 현대 사회의 모습에 가까워, 현대에 태어난 내가 느끼기에 타당하다 생각한 듯하다.
인간은 DNA에 새겨져 있는 절대 혼자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귄리, 의무, 책임의 균형을 유지하며 살아야 한다. 이기적이면서 최대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공동의 기회를 가져야 하기 때문에 복지국가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동의한다. 다만 사회주의와 같은 건 아니고 자유 시장경제체제를 유지하되,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 스피노자의 철학에 동의한다.
동시대의 사람들에겐 엄청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을 것 같다. 인간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며, 신도 증명할 수 없는 존재이며, 국가는 단순히 조정자 역할로 국민이 국가에 충성을 다할 필요가 없다니, 주장 하나하나가 당시 시대의 인물이 생각할 만한 내용인가.
지금 누가 가장 좋으며, 공감되는 철학자를 말하라 하면 스피노자라고 말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