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믿어줘야 할 아가에게

존중, 믿음 / 아가에게 쓰는 편지 #4

by 박제

아가야, 아빠는 아가가 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이유가 있을 거라는 걸 믿는단다.


9개월 아기가 뭘 알까 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아가가 하는 모든 행동을 관리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위험한 행동을 할 수 있어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아가야 아빠는 아가를 믿는단다.

아빠를 보고 방긋방긋 웃는 널 보면, 아빠를 알아보고 사람을 알아볼 줄 아는 인식 능력이 있는 널 믿는단다. 손가락을 입에 넣었을 때 무조건 깨물던 예전에 비해 지금은 아빠 손가락이면 약하게 무는 아가를 보며, 이제는 구별할 줄 안다고 아빠는 생각한단다.

입에 넣어도 되는 물건은 넣고 그렇지 않은 물건은 한참 동안 고민하는 널 보며, 아빠는 사물을 파악하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단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접근하기 전에 한참을 눈으로 바라보며 파악하는 시간을 갖는 널 보며, 아빠는 사려 깊고 신중한 아이라는 걸 믿는단다.

아가도 생각이 있고, 이유가 있고, 아빠가 이유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 걸, 아가가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다는 걸, 울 때도 찡찡거릴 때도 기다려줘야 한다는 걸, 좋은 건지, 말하고 싶은 건지, 짜증 내는 건지 기다리고 파악해야 한다는 걸, 아빠는 안단다.


무조건적으로 싫어하는 건 없고, 아가도 상황에 따라 싫을 수도, 좋을 수도 있다는 걸 아빠는 믿는단다.

싫어한다고 말한 적 없는데, 먼저 판단하려 하지 않는단다. 기다리고 나서 행동하려 한단다.

아가가 원할 때가 돼서야, 아빠는 들어주기만 하면 된다는 걸 아빠는 믿는단다. 아가가 배고플 때 밥 주고, 아가가 눈 비비고 쌕쌕거리고 졸려할 때가 돼서야, 자게 해줘야 한다는 걸 아빠는 알고 있단다.

안아줘야 하는 상황에서도 아빠가 두 팔을 뻗었을 때, 아가도 두 팔을 어깨높이로 벌려줘야만 아빠는 안는단다. 아가가 허락할 때만 아빠는 안으려고 한단다.

루틴이라는 것도 아가가 원하는 걸 해주는 상황에서 생긴다는 걸 알아. 아가가 원하는 게 루틴과 규칙보다 우선한다는 걸 알고 있단다. 아가가 울 때는 엄마, 아빠가 필요해서 우는 거라는 걸 좀만 안아주면 달래진다는 걸 알고 있단다.


아가를 믿는다는 게 아가를 혼자 무조건적으로 방치하는 게 아냐. 아가의 행동, 표현, 생각을 아빠의 긴 팔이 닿는 공간 안에서 보호하고 있는 내에서 하는 거야.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먼저 차단할 수 있는 위치에서 아빠는 아가를 믿는 단다.

아가야, 눈 맞추고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때, 아가도 느끼는 게 있다는 걸 아빠도 느껴져.

아가가 허리를 뒤로 젖힐 때는 싫어해서 그랬다는 걸 느껴져.

아빠에게 다가오는 널 보며 같이 있고 싶어 하는 마음이 느껴져.


아가야, 9개월 아가지만 원하는 게 있고, 싫은 게 있다는 사실을, 엄마, 아빠가 멋대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파악이 끝날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줘야 한다는 사실을 아빠는 믿는단다.


아가야 사랑해.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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