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얼어붙은 한강 위로 고양이가 걸어갑니다》를 읽고
꽁꽁 얼어붙은 한강 위로 고양이가 걸어갑니다를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한동안 제목만 바라보고 있었다. 얼어붙은 한강과 그 위를 걸어가는 고양이. 차갑고 단단한 풍경 위에 유연하고 조심스러운 생명이 놓여 있는 장면은 묘하게도 위태롭고 또 단단해 보였다. 그리고 그 제목을 쓴 사람이 김주하라는 사실은, 내가 알고 있던 그의 이미지와 겹쳐지며 더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는 늘 뉴스를 통해 단정하고 흔들림 없는 그의 모습을 본다. 정확한 발음, 절제된 표정, 감정의 기복 없이 중심을 지키는 태도. 그러나 책 속에서 만난 그는 완성된 앵커라기보다 수없이 흔들리고 고민했던 한 사람에 가까웠다. 그는 자신의 상처와 실패를 감추지 않았고, 단단함이란 처음부터 주어진 재능이 아니라 수많은 균열 끝에 비로소 생겨나는 결이라는 사실을 조용히 들려주었다.
책을 읽으며 나는 자꾸만 ‘얼어붙은 한강’이라는 말보다 ‘그 위를 걷는 고양이’라는 장면에 마음이 머물렀다. 얼음은 차갑고 쉽게 깨질 수 있다. 발을 잘못 디디면 빠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고양이는 멈추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그러나 끝내 앞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무모함이 아니라 균형감각이다. 두려움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안고도 한 걸음을 내딛는 태도다.
나는 그 장면에서 나 자신의 시간을 떠올렸다. 조직 안에서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꼈던 순간들, 내려놓지 않아도 될 자리를 스스로 정리하며 돌아섰던 시간들, 겉으로는 담담했지만 속으로는 수없이 질문을 던졌던 밤들. 누군가는 그것을 후퇴라 말했지만, 나는 안다. 그것은 얼음의 두께를 재보며 더 안전한 길을 찾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김주하는 화려한 성공담을 늘어놓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지나온 겨울을 담담히 기록한다. 그는 완벽한 선택을 한 사람이 아니라, 때로는 실수했고, 때로는 오해받았고, 그럼에도 다시 일어섰던 사람으로 서 있다. 그래서 그의 문장은 과장되지 않는다. 오히려 낮고 고요하다. 그러나 그 고요함 속에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 힘이 담겨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얼음 위에 서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 속에서 미끄러질까 봐 걱정하는 마음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고양이는 박수를 받기 위해 걷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건너가기 위해 걷는다. 그 단순한 목적이 오히려 가장 강한 동력이 된다.
삶에는 누구에게나 얼어붙은 시기가 있다. 아무리 애써도 녹지 않는 관계, 노력해도 쉽게 풀리지 않는 상황, 차갑게 식어버린 평가와 시선들. 그 시간은 분명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 위를 건너본 사람만이 알게 되는 감각이 있다. 얼음 아래로 흐르는 물의 소리, 균열이 생기기 전의 미세한 떨림, 그리고 끝내 건너섰을 때의 고요한 안도.
나는 이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지금 내 삶의 한강은 완전히 녹지 않았다. 여전히 조심해야 하고, 때로는 돌아가야 하며, 잠시 멈춰 서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두려움이 사라져야 걸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품은 채로도 걸을 수 있다는 것을.
《꽁꽁 얼어붙은 한강 위로 고양이가 걸어갑니다》는 거창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한 사람의 태도를 보여준다. 차가운 현실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 법, 넘어질지라도 다시 균형을 잡는 법, 그리고 결국은 자기 속도로 건너는 법.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한강 위에 서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강가에서 망설이고, 누군가는 이미 몇 걸음 내디뎠으며, 누군가는 거의 건너편에 닿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멈추지 않는 마음이라는 사실을, 이 책은 조용히 일깨운다.
발끝이 시릴지라도, 얼음이 얇아 보일지라도, 나는 이제 알고 있다. 건너야 할 강이라면 결국 걷게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나를 지탱해 줄 것은 타인의 확신이 아니라 나 자신의 체온이라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나는 생각한다.
얼어붙은 강 위라도 괜찮다고.
고양이처럼, 나의 균형을 믿으며 천천히 걸어가면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