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이라는 거대한 생태계 안에서 '보직'은 화려한 훈장이자 동시에 두터운 가면이다. 그 자리에 앉아 있을 때는 세상 모든 이가 나의 동료이자 벗인 듯 굴지만, 막상 그 자리에서 내려와 평범한 '나'로 돌아가는 순간, 인연의 밀도는 여실히 드러난다. 나는 최근 몇 년 사이 세 번의 큰 상(喪)을 치르며, 조직이라는 곳의 생리와 인간관계의 민낯을 처절하게 마주했다.
첫 번째 이별, 권위의 잔상이 남긴 문전성시
친정엄마를 보내드렸던 그날, 나는 수간호사라는 보직을 내려놓은 지 딱 두 달째였다. 아직은 조직 내에 나의 영향력이 온전히 남아있던 시기였다. 장례식장은 조문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고, 조의금 봉투가 쌓여갔다. 조문을 오지 못해 미안하다는 문자가 숱하게 날아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것이 온전히 '나'라는 사람을 향한 위로인 줄 알았다.
두 번째 이별, '예우'라는 이름의 공식적인 방문
두 달 뒤 이어진 시어머니의 상. 여전히 조직 내 영연실을 사용했고, 상급자들과 동료 보직자들이 직접 방문해 위로를 건넸다. 하지만 미묘한 균열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직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난번엔 그토록 살갑던 이들 중 몇몇은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췄다. '자리'가 주는 예우는 살아있었지만, '권력'이 빠져나간 자리를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듯했다.
세 번째 이별, 안개처럼 흩어진 이름들
그리고 3년 뒤, 친정아버지의 상을 치르며 나는 비로소 조직의 차가운 진실을 목격했다. 더 이상 보직자가 아닌 나에게, 과거 그토록 머리를 조아리던 이들의 조문과 부의금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권위가 있을 때는 필요에 의해 내 곁을 지키던 이들이,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자 더 이상 나를 찾아올 이유를 찾지 못한 것이다. 그들에게 장례식장은 슬픔을 나누는 곳이 아니라, 관계의 이득을 계산하는 비즈니스의 현장이었다.
필요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진심'
서글펐다. 하지만 그 서글픔의 끝에서 나는 뜻밖의 선물을 발견했다. 안개처럼 흩어진 수많은 명함들 사이로, 끝까지 내 곁을 지켜준 이들이 보였다. 내가 보직을 가졌을 때나 평간호사로 돌아왔을 때나 변함없이 내 손을 잡아주던 이들. 나의 권력이 아닌 '나'라는 사람 자체를 아껴주던 진짜 인연들이 선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세 번의 상을 치르는 동안 나는 인간관계의 거대한 필터링을 거쳤다. 권력이라는 화려한 조명이 꺼졌을 때 비로소 누가 진정한 내 편인지, 누가 멀리해야 할 인연인지가 확연히 구분되었다. 이것이 바로 사회이고 조직이며, 우리가 마주해야 할 인생의 민낯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허깨비 같은 인맥에 연연하지 않는다. 자리가 주는 허울뿐인 인사치레보다, 이름 없는 나를 진심으로 안아주는 소중한 이들에게 나의 남은 시간을 쓰려 한다. 조직은 나를 보직으로 기억할지 몰라도, 진짜 사람들은 나를 나의 삶으로 기억해줄 테니까. 시린 상처를 통해 얻은 이 값진 통찰이야말로, 부모님이 마지막으로 내게 남겨주신 인생의 큰 가르침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