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피아니스트의 마지막 소나타

그러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by 박지숙

병동에 '선남선녀'로 이름난 신혼부부가 입원했다. 아내는 피아노를 전공한, 손가락이 가늘고 하얀 여리고 여린 여인이었다. 갓 결혼하여 깨소금 냄새가 나야 할 신혼집 대신, 그녀가 마주한 것은 소독약 냄새 진동하는 무채색의 병실이었다.

단순한 고열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정밀 검사 결과는 잔인했다. '급성 백혈병'.

청천벽력 같은 진단 앞에 그녀는 무너졌다. 아니, 무너졌다기보다 현실을 거부했다. 예쁜 드레스를 입고 건반 앞에 앉아 있어야 할 자신이 왜 환자복을 입고 독한 항암제 링거를 달아야 하는지, 그녀의 여린 영혼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사고가 터졌다. 그녀가 병원에서 사라진 것이다.

링거를 뽑아 던지고 병원을 도망쳐 나간 그녀는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 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병마는 도망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가족과 남편의 눈물 어린 설득 끝에 그녀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도망치려 했던 그 가녀린 다리는 이미 걷기조차 힘들 정도로 쇠약해져 있었다.

그때부터 지옥 같은 사투가 시작됐다. 굵은 바늘이 뼈를 뚫는 고통스러운 골수 검사, 온몸의 피를 바꾸는 이식 시술. 피아노 건반 위를 유려하게 흐르던 그녀의 손가락은 이제 고통으로 침대를 움켜쥐며 가늘게 떨렸다. 남편은 곁에서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대신 아파해 줄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함에 매일 가슴을 쳤다.

그러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가 숨을 거두던 날, 하늘도 이 가혹한 운명이 슬펐던 것일까. 창밖에는 억수같이 비가 쏟아졌다. 가장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해야 할 나이 스물여섯, 그녀는 마지막 소나타를 끝내지 못한 채 먼 하늘나라로 떠났다.

임종을 지키던 남편의 통곡 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병동 복도까지 흘러넘쳤다. 냉정한 치료와 차가운 수치에 익숙해져야 하는 우리 간호사들도 그날만큼은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환자의 죽음이 업무의 일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다잡았지만, 그녀의 여린 어깨와 남편의 절규를 보며 우리는 '간호사'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함께 울었다.

병원 밖으로 나가는 운구차 위로 쏟아지던 빗줄기는 마치 그녀가 세상에 남기고 간 마지막 눈물 같았다.

나는 가끔 비가 오는 날이면 그 피아니스트 환자를 떠올린다. 도망치고 싶을 만큼 무서웠던 그 고통 속에서 그녀가 마지막으로 듣고 싶었던 소리는 차가운 기계음이 아니라 남편의 목소리, 그리고 자신이 사랑했던 피아노 선율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날 함께 울며 깨달았다. 간호란 단순히 약을 투여하고 수치를 체크하는 일이 아니라, 한 인간이 겪는 거대한 슬픔의 파도에 기꺼이 몸을 적시며 함께 젖어가는 일이라는 것을. 하늘나라에서는 그녀가 아픔 없는 건반 위에서 마음껏 행복한 곡을 연주하고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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