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풀냄새가 퍼지는 이른 아침 시내에서 손님이 왔다.
“어머나. 연락도 없이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아저씨 아줌마가 들어오자, 엄마는 깜짝 놀라며 반가워했다.
“어르신 잘 계셨습니까.”
엄마는 커피 두 잔을 내어 오고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나는 외할머니가 손에 쥐어 준 요구르트를 거꾸로 들고 이로 뜯어서 쫍쫍 먹었다.
“어르신 저희가 장사를 하려는데 부적을 좀 써주셨으면 해서 왔습니다.”
어른들의 대화는 길어졌다.
외할머니는 평소 숫자를 셀 때 엄지 손끝으로 네 손가락의 마디를 하나씩 짚으면서 계산했다.
“열흘 뒤에 오면 되것소.”
부적은 원하는 사람이 찾아오면 써줬다.
아무 날에나 쓰지 않고 달력을 보고 날짜를 정했다. 쓰는 날도 가져가는 날도 좋은 날을 골랐다.
법당으로 가는 외할머니를 엄마가 쟁반에 무언가를 담아 뒤따르면, 나도 슬그머니 따라갔다.
엄마는 쟁반에 있던 종지에 빨간색 돌을 공이로 찧어서 곱게 갈았다.
곱고 반짝이는 가루가 되면 기름을 섞어 두고, 노란 한지를 적당한 크기로 잘랐다.
외할머니는 얇은 붓을 적셔 천천히 동그라미 모양, 네모 모양, 선, 한자를 균형 잡힌 모양으로 그렸다.
종이에 붓 지나가는 소리만 들리는 고요함에 침 삼키는 소리마저 조심스러웠다.
“할매 이건 무슨 말이야? 뜻이 있어?”
“요고는 재물 들어오라는 부, 이거는 소원 들어주는 것이지.”
우리 외할머니는 사람의 마음을 달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나는 부적을 가져가는 사람에게 큰 효과가 있기를 기도했다.
밖으로 나오니 법당 처마 아래 제비가 집을 지으려고 했다.
“에그, 여기는 집 못 짓게 해라.”
“예.”
엄마는 제비가 진흙을 물어와 붙이면 빗자루로 긁었다.
제비 부부와 엄마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붙이는 속도와 떼어내는 속도가 치열해지자 제비는 결국 며칠 만에 포기했다.
제비랑 같이 살고 싶은데 매번 쫓아내니 불만이 쌓였다.
“엄마. 할매는 왜 제비 싫어해?”
양 볼을 뚱뚱하게 부풀리고 입을 삐죽거리면서 물었다.
“싫어하는 게 아니고 몇 해 전에 제비가 하도 울어서 나와보니까 새끼가 둥지에서 떨어져서 죽어있더래. 그 후로는 아예 집을 못 짓게 하셔. 죽은 새끼 치운 기억이 떠올라서 힘드신가 봐.”
“왜 떨어졌지?”
“주변에 뱀도 고양이도 없었다는데 어쩌다 떨어졌는지 모르지.”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유도 모르고 삐죽거린 것이 미안했다.
방으로 뛰어 들어가서 외할머니 품에 안겨 얼굴을 묻었다.
우리 외할머니는 죽음을 싫어했다.
개도 고양이도 키우기 싫다고 했다. 이유는 듣지 않아도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세월이 아무리 두꺼운 이불을 덮어도 외할아버지를 잃은 고통은 잔인하도록 선명했다.
눈물은 말랐어도, 심장에 남은 흉터는 낫지 않았다.
외할머니의 마음에도 달램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