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의 여파로 같은 유니폼을 입던 ‘다른 우리’는 한날한시에 쫓겨났다.
여러 직장을 전전하다 겨우 안정된 직장을 다니던 무렵, 엄마는 외할머니 집으로 가자고 했다.
외삼촌들이 모두 있었고, 표정은 무거워 보였다.
술과 노름 여자 문제로 우리 삶을 풍랑에 빠트렸던 아빠가 다시 돌아오려 한다고 했다.
그 어둠에서 겨우 빠져나와 행복한 우리에게 아빠가 다시 오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어른들은 받아줘야 한다고 했고, 나는 싫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때 외할머니는 처음으로 내게 화를 냈다. 사죄한다는데 딸이 그렇게 매정하면 되겠냐며 나더러 못됐다고 했다.
나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이후 외할머니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다들 그 세월을 어찌 그리 쉽게 잊을 수가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심지어 엄마는 묵묵하기만 했다.
나만 독이 올라 가시를 잔뜩 세운 복어 같았다.
몇 달 뒤 아빠는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아랫집으로 왔다.
엄마는 위아래를 오갔고, 나는 아래층에 내려가지 않았다.
한 집에 남겨져 유일하게 의지하던 동생은 회사 다니며 연애하느라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세상에 나만 뚝 떨어진 것 같아 마음 둘 곳이 없었다.
아빠가 일하러 가면 엄마를 보러 내려갔다. 위층으로 돌아오면 집안에서 내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돌아오며 공허했다.
그즈음 나는 사내 연애를 시작했다. 집으로 곧장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생겼다.
시간이 좀 지나 외할머니가 혼자 생활하기 불편해졌다.
엄마는 외할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다니기 편하도록 아래층으로 모셨다. 나는 그제야 내려갔다.
출근 전 밥을 먹으러 가면 외할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맞아줬다.
“아이고 오늘은 어제 하고는 또 다르게 참하네. 머리핀도 예쁘고. 토끼 같네. 토끼.”
밥을 먹는 동안 머리를 쓰다듬고 눈을 떼지 못했다. 웃고 대답하느라 밥풀이 튀어도 우습다며 좋아했다.
퇴근길에 집이 보이면 외할머니 방에 불이 켜져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켜져 있으면 꼭 들러서 한참 떠들다가 올라갔다. 그런 내가 기다려졌는지 점점 늦은 시간까지 불이 켜져 있는 날이 많아졌다.
그런데 데이트가 길어지는 날이면, 피곤해서 불이 켜져 있어도 망설이며 위로 올라갔다.
연애가 길어지니 외할머니는 연인을 데려오라 했고, 인사하러 오는 날 대게를 대접했다.
외할머니는 내게 귓속말로 ‘저 정도면 됐다’라고 했다.
게를 먹고 있는데, 외할머니가 갑자기 이가 부러졌다고 했다.
정말 이가 많이 깨져있었다.
“아이고 이상타. 이게 와이라노. 이상타. 이상타.”
외할머니는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불안해하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할매. 괜찮다. 내일 아침에 병원 같이 가자. 요즘은 티 안 나게 싹 고칠 수 있다. 걱정하지 마.”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달랬다. 하지만 외할머니의 표정은 뭔가 복잡하고 다른 느낌으로 가득했다.
우리 외할머니는 대단한 건치였다.
그 두려움은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오직 외할머니만 느낄 수 있는 직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