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영웅 서사가 아니어서
어릴 적 책을 좋아했던 나는
유독 위인전을 좋아했다.
태어날 때부터 남달랐던 사람이 아니라,
조금은 부족하고 남들과 달랐던 사람이
삶의 역경을 건너
끝내 자기 자리에 도착하는 이야기들이 좋았다.
만화 속 영웅도 마찬가지였다.
하늘을 날고, 악당을 무찌르고,
약한 사람을 구해내는 존재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그런 이야기를 좋아한다.
아마도
삶이 실제로는 그런 이야기와
너무 멀리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삶은 사람을 자주 초라하게 만들고,
아무리 애써도 져야만 하는 순간을
너무 쉽게 건네준다.
어릴 때는
약한 사람을 위해 대신 소리를 내는 어른이 있었고,
자기 몫을 내어주며
누군가를 지켜내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누구를 속이든 돈만 많으면,
누구를 아프게 하든 권력만 있으면
결국 대단한 사람이 되는 세상이 되었다.
돈이 사람의 얼굴을 만들고,
돈이 권력을 낳고,
돈이 역사를 끌고 간다.
진짜와 가짜가 교묘히 섞여
이제는 무엇이 진짜인지 묻는 일조차 피곤해지고,
하루의 노동을 끝내고 나면
진짜든 가짜든
내 삶에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며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영웅 이야기를 놓지 못한다.
세상을 구하는 거창한 사람이 아니라
넘어지지 않으려고,
다른 사람을 밀치지 않으려고
하루를 버텨내는 사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끝내 자기 몫의 선을 지키는 사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영웅은
하늘을 나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사람으로 남으려는 사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