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노비가 되었을까

우리는 언제 질문을 멈췄을까

by 김현정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조용해졌을까. 묻지 않았는데도 고개를 끄덕이는 일에 익숙해지고, 부당함을 느끼면서도 말 대신 숨을 고른다.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노비는 대체 누가 자청했을까.


아무도 ‘노비가 되겠습니다’라고 말한 적은 없다. 다만 오늘을 넘기기 위해,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괜찮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 조금씩 자신을 접어 넣었을 뿐이다. 하루에 한 번, 어떤 날은 마음이 닳을 때까지.


우리는 선택하고 있다고 믿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침묵하는 것도 모두 내 판단이라 여겼다. 그러나 마음 한켠에서는 알고 있었다. 다른 답을 고르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같은 쪽을 택했고, 그 선택에 익숙해졌다.


노비는 족쇄로 태어나지 않는다. 침묵보다 더 먼저, 맞지 않아도 맞다고 맞장구치는 법을 배운다. 내 일은 미뤄두고, 주인이 원하는 것을 먼저 꺼내 놓는다. 웃고 싶지 않은 날에도 웃는 얼굴을 연습한다. 그렇게 몸이 먼저 익히고, 마음은 나중에 따라온다.


나는 오래도록 선을 넘지 않으려 애써왔다. 말과 마음 사이에 선을 긋고, 분노와 체념 사이에서 균형을 잡았다. 그것이 어른의 태도라 믿었다. 하지만 뒤늦게 알았다. 선을 지킨 것이 아니라 선을 안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말한다. 네가 바뀐다고 세상이 달라지겠느냐고.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침묵이 늘 옳아지는 것은 아니다.


노비를 자청한 사람은 없다. 다만 질문을 미뤄둔 사람들이 있었을 뿐이다. 왜 그래야 하는지 묻지 않게 되었을 때, 언제부터 괜찮아졌는지 설명하지 않게 되었을 때, 우리는 조용히 이름표를 바꿔 단다.


이 글은 거창한 말을 하지 않는다. 큰 결심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다만 한 번쯤, 나 자신에게만은 묻고 싶다. 이 선택은 정말 내 것이었는지, 이 침묵은 내가 감당하기로 한 것인지.


노비는 선언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하루하루의 양보 위에서 자란다. 그러니 오늘, 아주 작은 것 하나만 되찾아도 괜찮지 않을까. 불편함을 느낄 권리, 생각을 말할 자격, 그리고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


누가 노비를 자청했나. 아마도 아무도 아니다. 그래서 아직 늦지 않았다고, 나는 조심스럽게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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