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같은 소설: 우주밖에 모르던 소녀의 꿈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한 편은 아니었지만, 별을 좋아했다. 하늘에 박힌 별들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고, 별자리를 연구하며 지구 반대편의 하늘도 탐험했다. 호주에서 본 별자리는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펼쳐져 있어 새로운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어릴 적 부모님의 도움으로 남쪽 나라에 자주 갔고, 초등학교 때는 현장 체험학습으로 천문대도 자주 방문했다. 그곳에서 가을의 별자리를 관찰하며 우주를 탐험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곤 했다. 나는 특히 내 별자리인 물고기자리를 좋아했고, 그 열정을 담아 왼팔에 파란색 잉크로 물고기자리 문신을 새겼다.
고등학생이 된 나는 열심히 공부하여 "수재"라는 소리를 들었고, 최고 성적을 목표로 안간힘을 썼다. 부족한 문과적 감성을 보완하기 위해 책을 많이 읽으며 상상력을 키웠고,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과에 입학했다. 이후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치고 한국천문연구원에 입사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동료들은 각기 다른 행성과 소행성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인생을 바친 사람들이었다. 하얀 가운을 입고 연구에 몰두하는 그들이 멋져 보였고, 나는 그들의 열정에 힘을 얻었다.
처음 시작한 연구는 내 석박사 논문과 연관된 블랙홀 관련 주제였다. 나는 허블 망원경을 통해 우리 은하계에서 새로운 블랙홀을 찾고자 했다. 10년 만에 마침내 북극성 근처에서 블랙홀을 발견했다. 그것이 위치상 북극성과 가까이 보이는 점에서 착안해 "칼리스토의 게이트"라고 명명했고, 학계에서도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해 주었다. 나는 그 블랙홀을 볼 때마다 반가웠고, 마치 오랜 친구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갑자기 그 블랙홀이 폭발하며 잔해만 남았다. 당시에는 블랙홀이 소멸할 수 있다는 생각이 없었는데, 그것이 실제로 내 연구 대상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많은 천문학자 동료들이 놀랐다. 결국 그 폭발은 작은 블랙홀에서만 가능한 예외적인 사례로 인정되었다. 그 주변은 이상하게도 암흑 물질로 가득 차 있었고, 흡입력이 약해지며 소행성들이 찌그러져 있었다. 나는 당황해 연구실에 보고했고, 이후 NASA에서도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학계에서는 방사선이 시간이 흐르면 지구에 도달해 약 3000년 후 종말을 맞이할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민간인들 사이에서 우주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어린이들을 위한 천문학 수업도 활성화되었다. 블랙홀의 발견과 소멸은 경제와 정치에도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는 임기를 4년으로 줄여 미국의 대통령 임기제를 도입했으며, 상하원제를 시행하는 등 제도가 변화했다. 나는 천문학을 역사 연구와 접목해 강의하면서 유명 인사가 되었다. 텔레비전쇼에도 자주 출연하면서 동료들과 멀어졌고, ‘돈을 밝히는 천문학자’라는 오명까지 생겼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강의를 맡고 사인회와 책 판매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며 큰 수익을 올렸다. 갑자기 생긴 수억 원은 연구에 대한 보상처럼 느껴졌다. 로또에 당첨된 기분으로 스포츠카를 사고, 서울에 작은 아파트도 구매했다.
그러나 나의 과학적 소임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결국 방사선으로 지구가 녹고 생명체가 살 수 없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나는 3000년 후 종말을 앞둔 세대에게 블랙홀 연구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결국 연애와 아이도 포기한 채, 인간의 본성을 따라 쾌락만을 추구하며 살았으나, 우주와 쾌락만이 내 삶의 중심이 되어버렸다. 우주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천재이자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쾌락의 일환으로 허블 망원경을 통해 관측을 이어갔고, 끊임없이 천문학적 지식을 업데이트하며 하늘로 가득 찬 머릿속을 채웠다.
결국 나는 쾌락을 좇아 우주에 집착하는 존재가 되었다. 오븐 렌지만 겨우 돌릴 줄 아는 박학다식한 바보가 되어, 파출부 아주머니가 집을 돌보게 했다. 그러나 내 인생이 너무 허무하게 느껴졌고, 지금 이 자리에서 이 기나긴 유언을 남기며 인생을 마감하려 한다.
나의 모든 유산은 한국천문연구원 앞으로 기부한다.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