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음식 앞이든 목표 앞이든 독해지는 법
나는 몸을 일부러 혹사시키는 경우가 많다. 운동도 마찬가지로 가장 강도 높게 하는 것도 그 이유다. 내가 내 자신을 쥐어짜다 보면 득음을 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희생이 따르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으로 예를 든다면 나는 쇼핑 중독을 이겨냈고, 용돈을 아끼기 위해 밖에서 커피도 잘 사 마시지 않게 되었다. 그런 식으로 나는 버티고 있지만 오히려 행복하다. 그 매달림에서 오는 쾌락은 찢어지지만, 이상하게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 그 분비물은 온몸의 회로를 돌듯이 소용돌이치고 박아 나를 온전하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굶는다.
단식을 예로 든다면, 나는 간헐적 단식을 가장 자주 하는 사람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식비도 아끼게 되고, 설거지할 시간도 줄이게 되며 음식물을 남기는 것을 방지하는 것도 된다. 나 하나쯤 한 끼 안 먹는다고 고통스럽지 않다. 그리고 그 시간을 내가 원하던 행복인 글짓기와 영상 편집 등으로 마련한다. 그렇게 하루의 오후 세 시가 지나가고 나는 저녁 7시에 만찬을 즐겨본다. 그 만찬에서 나오는 음식들을 음미할 수 있고 감사하게 되는 경향이 생긴다. 무조건적으로 단식이 좋다고는 볼 수 없지만 나는 내 자신에게 뿌듯함을 느낀다.
음식 이외에도 잠도 마찬가지이다. 잠을 줄이고 나의 생각을 온전히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면 나는 비로소 날개가 뒤로 뻗치듯 생겨 날아갈 것만 같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문구와 내가 상상하던 바를 이루어낼 것만 같은 희열감에 젖어 땀이 난다. 그렇게 베개 속에서 깃털들이 나풀거리면 나는 그제야 졸음이 쏟아져 잔다. 그렇게 하다가 어느새 뒤척이면서 또 생각에 잠긴다. 그렇게 물고 물리는 이야기 꼬리들을 푹 고아서 새벽 4시에 글을 작성하면 내가 원하던 작품 하나가 탄생한다. 수필이든 소설이든 감각적이고 세심하게 표현되어 부러질 것만 같은 글이 그때 가장 잘 나오는 듯하다.
그렇게 나는 독해진다. 그렇게 할수록 나는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고 내 몸매부터 시작해서 정신과 원하는 재화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희생하고 죽일 줄 알아야 생기는 보상이 달콤하다는 것을 우리는 학생 때부터 배워 왔다. 참는 마시멜로가 맛있고 달콤하며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처럼 말이다. 우리는 공부를 통해 참된 가르침을 받는 대신 뼈를 깎는 인내심을 얻었어야 했다. 그리고 거기서 얻은 교훈을 일깨우기 위해 혹독하게 채찍질하며 복습도 했다. 그런 사회에 있기에 우리는 엄동설한에서도 살아남는 민족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 모두 추위에 눈감고 서 있을 줄 아는, 전쟁이 나도 반격할 줄 아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절개가 높이 평가되며 무엇보다 수많은 인재들이 분포한 국가로도 인지된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남는 것이다. 희생으로. 그 희생은 과거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의 삶은 희생이 바탕이었다. 그리고 부모님의 희생, 선조의 희생으로 지금의 내가 오게 된 것이니, 잠시 굶는 것으로 내가 굶주리겠는가? 아니다. 나는 살기 위해 오히려 굶주릴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