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운반책이 되어버린 에어
다음 날이 밝았다. 날이 밝았지만, 커튼이 아닌 나무 판자로 가려진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빛으로 대충 짐작해서 알았다. 나에게서 역겨운 냄새가 났다. 이불을 얼마나 오래 빨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 냄새가 배어 나에게까지 옮겨온 것 같았다. 참으로 힘들었던 점은 밖에서 나를 감금시킨 상태였기 때문에 화장실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다. 언제쯤이면 문이 열려 화장실을 갈 기회를 부여받을까 싶었다. 그리고 거기서 이어지는 속상한 생각들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만일 계속해서 이곳에서 살게 된다면 결국 범죄자로 낙인찍혀서 편하게 살지 못한 채 어려움으로 가득 찬 삶을 살겠지 싶었다. 그렇게 나는 무서운 상상을 하며 오줌보를 부여잡았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문이 딸깍 열렸다. 가장 맏형인 조니가 문을 열자마자 나는 화장실을 가도 되냐고 물었다. 그는 복도를 쓱 보더니 같이 가야 한다는 엄중한 말을 한 뒤 허락했다. 나는 샤워도 해도 되냐고 물었다. 그는 내 헝클어진 머리와 악취를 느꼈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당연하다고 하더니, 동생 지아레가 입지 않는 옷 한 벌도 가져다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옷이 별로 없기 때문에 지아레의 옷이 필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아레의 옷에는 악취가 날 것 같지 않았다. 낡았어도 계속 빨래를 한다는 증거가 보였다.
나는 끝 방 복도로 달려가 오줌을 눴다. 오줌을 누자마자 상쾌함이 밀려왔다. 그것만으로도 사람이 살 수 있는 행복이었다. 바로 샤워를 시작하려고 샤워기의 물을 틀었는데, 아쉽게도 온수는 나오지 않았다. 미지근한, 수압이 낮은 물줄기가 희미하게 뿌려졌고, 나는 그 물을 고이 받아 세수를 했다. 그다음에는 머리카락을 붙잡고 흔들어 물을 머금게 했다. 적셔진 머리카락은 한 움큼씩 빠졌다. 머리를 감을 비누 하나밖에 없어서 비누로 머리를 감았는데, 머리가 퍽퍽해지며 윤기를 잃었다. 머리의 생명력이 끊어지는 느낌에 머리카락을 잘라 버리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한낱 머릿결에 집착할 때가 아니었다. 그리고 양치를 했다. 개운함이 온몸에 밀려들어왔다. 그래서 그런지 범죄자여도 한껏 멋쟁이 범죄자라고 말하고 다닐 수 있는 쿨함이 번지르르하게 났다. 나는 내 자신에 취해버렸다. 하지만 그 취함은 곧 삭제되었으니, 바로 지아레의 옷 때문이었다. 그 헌옷은 정말 낡았다. 로고가 다 빠져버렸다. 그리고 워낙 쭈글거려서 흰 티인데도 회색 티처럼 보였다. 남아 있는 옷들을 아끼기 위해 지아레의 헌 옷을 입었다. 속옷은 빨아 널어야 했기에 바지 안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옷을 입었다.
10분이 흘러 나오자 조니는 이제 나를 믿는 눈치였다. 내가 그의 명령에 빠르게 맞춰 움직이니 거슬리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어떻게든 해결한 악취에 만족해했다. 그리고 다시 나를 방 안에 넣고 같이 방에 앉아 있었다. 나는 간이침대 위에 웅크리고 앉았고, 조니는 건너편에 있는 의자를 가져와 앉아 주위에 있는 지도를 보며 생각에 잠긴 듯했다. 나는 그의 앞에서 속옷 빨래를 펼쳐 펄럭인 뒤 간이침대의 틈에 널어놓았다.
지아레와 애릭이 들어왔다. 지아레는 마약에 취한 눈치였다. 그의 눈 흰자가 가득 차 있었고, 그가 굿모닝을 외쳤지만 “군머링”으로 들리는 것을 보아 취해 있었음을 알았다. 그는 큰 숨을 쉬며 나에게 말을 이어가려 했지만, 결국 애릭이 대신 말했다.
“바비 인형, 너는 오늘 조지타운에 가서 일을 시작할 거야. 우리는 30분 정도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니 그렇게 알아둬. 그리고 너에게 에어팟을 하나 귀에 꽂아줄 테니 우리 말을 듣고 운반하면 돼. 위험한 상황이 오면 ‘범블비’라고 외치면 돼.”
애릭은 가방을 챙겼다. 가방 속 내용물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묵직한 책가방을 들고 있었다. 녹색 잔스포츠 가방에 총 한 자루를 넣었고, 내가 묶인 방의 서랍 왼쪽을 열쇠로 열었다. 그러자 수많은 양의 하얀 가루가 봉지에 담겨 있었다. 묵직한 가방 안에 더 채워 넣었다.
“언제 떠나나요?”
“지금.”
애릭은 내 손을 잡고, 조니는 내 등을 떠밀며 나갔다. 나는 그래서 내 가방을 챙기지 못했다. 떠밀려 나갔기 때문에 조니 방에 분홍색 가방을 두고 나왔다. 나의 안전장치를 하지도 못한 채 말이다. 애릭이랑 동반해서 나가기 때문에 가만 보면 변태짓은 없을 것 같았는데, 뭔지 모를 찝찝함이 있었다. 가방 안에 남은 300달러를 훔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어떻게든 잠금장치로 가져가려고 했으나 가져가면 티 난다고 단호하게 조니가 말렸다. 그래서 나는 버둥거렸다. 내 가방을 어떻게 가만히 두고 나가냐면서 물었다.
"내가 그러면 서랍장 위에다가 넣어둘 테니 절대로 어머니도 얘들도 안 건드리게 할 테니 걱정하지 말아."
하면서 서랍장 맨 위칸에 올려두었다. 오로지 조니만 한 키 큰 사람만이 올릴 수 있는 정도의 높이였다. 천장에 거의 닿는 수준으로 넣어놓자 나는 안심했다. 그리고 애릭의 손을 잡고 나왔다.
“아티카와 칸,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
조니가 왼쪽 끝 방에 가서 인사하자 아이들의 목소리가 해맑게 들렸다. 아까 씻으러 갔을 때는 아이들이 자고 있어 얼굴을 보지 못했는데, 그새 아이들이 깨어 환한 목소리로 오빠, 형들을 배웅해 주었다. 아티카는 잘 자고 일어나지 못했는지 징징거렸다. 아티카는 분홍색 엘사 파자마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또 곱슬머리가 헤일로처럼 동그랗게 말려져 있었다. 잠을 설쳤는지 오빠들한테 키스를 나누지 않았다. 오빠들은 그래도 귀엽다고 아티카에게 허그랑 키스를 퍼부어주고 나갔다. 하지만 옆에 있는 아기 남동생한테는 힘껏 안아주고 누나를 잘 돌보라면서 훈계 아닌 훈계를 해주고 나섰다. 그 아이 이름은 칸이었다.
나는 오른쪽 끝으로 나가 어머니를 다시 만나 뵈었다. 어머니는 담배를 피우며 아침 식사를 하고 계셨다. 그리고 나를 보더니
"바비, 오늘 하루 잘 보내거라."
한 말씀 나누어 주셨다.
아마 모든 백인들한테는 바비로 불리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는 밖으로 나가서 5분 정도 걸으니 어제 탔던 덤프트럭이 나왔다. 덤프트럭의 타이어는 몇 개 빠져 있었고, 대신에 나무 판자로 만든 상자 두 개가 실려 있었다. 덤프트럭을 자세히 보니 앞부분은 주황색이었고 오른쪽 라이트가 나가 있는 상태였다. 덤프트럭에는 Wish Wash라고 쓰여 있었다. 마치 세차해 주는 업체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주황색으로 녹이 슬어 있었지만 튼튼해 보였다. 무엇보다 노란색과 빨간색 글자로 새겨져 있었다. 그 Wish Wash라는 문구는 오래된 문체로 쓰여 있어서 올드한 느낌이었다. 이제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나는 덤프트럭의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어제처럼 애릭이 조수석에, 조니가 운전석에 탔다. 그리고 할렘가를 나섰다. 할렘가를 벗어나자 내가 살고 있는 도시, 오스틴이 이렇게 큰 줄 몰랐다. 한참의 고가도로와 고속도로를 향해 나가니 횡한 벌판이 나왔다. 이렇게 나는 평생 떠난 적 없는 사람으로서 너무 신기한 경험을 했다. 차들이 줄줄이 텍사스 밖으로 빠져나가는데 다들 어딜 가느라 이렇게 분주한가 싶었다. 항상 오스틴에서 자라 살았기에 이렇게 큰 도시라는 걸 잊고 있었던 것 같았다. 중심부를 지나 남쪽으로 향하자 소똥 냄새가 가득한 마을들을 지나쳤다. 어떤 농장은 거대하게 옥수수를 기르고 있었다. 어떤 곳은 지독한 냄새가 나는 거름으로 가득한 농장도 있었다. 처음엔 역겨웠지만 10분이 지나자 냄새가 빠졌다. 냄새나는 곳을 지나갈 때마다 누군가 한 번쯤 방귀를 뀐 것 같았다.
조지타운에 진입하자마자 애릭이 나를 건드렸다.
“바비, 이제 에어팟을 끼도록 해. 여기 끼고 머리카락으로 가려. 우리 말만 듣고 절대 딴생각하지 마.”
내 금발 머리를 앞으로 쏠리게 해서 에어팟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이 가장 큰 핵심 중 하나였다. 나는 나이키 힙한 검은색 모자를 푹 눌러썼다. 그리고 귀를 완전히 가리게 하기 위해 한층 더 앞으로 쏠리게 모자를 고정시켰다. 나는 누가 봐도 가난한 아이처럼 보였다. 다림질도 안 한 구겨진 티셔츠와 검은색 나이키 모자, 그리고 펑퍼짐한 청바지까지. 갱스터, 힙합 스타일 같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머리를 한쪽으로 내리니 약간 외소한 동양인처럼 보이기도 했다.
조니는 계속해서 조지타운의 핵심부로 가는 듯했다. 전원주택들이 지나가고 점점 한적한 마을이 나오기 시작했다. 덤프트럭은 어느 순간 멈추었고, 애릭은 나에게 작은 미니백을 주었다. 샤넬 로고가 그려진 짝퉁 가방이었다. 샤넬이라고 쓰이지 않고 사넬이라고 쓰여 있었다. 잘 보면 스티칭이 제대로 엮이지 않아서 누가 봐도 웃긴 가방이었다. 검은색 무늬들이 독특하게 튀어나왔는데, 샤넬의 문양을 따라 하려다 어설프게 떨어져 나간 패턴이었다. 옆으로 멜 수 있는 가방이라 요즘 힙스터들이 착용할 법한 가방이었다. 그는 나이키 캡 모자도 씌워줬다. 그렇게 나를 치장시킨 뒤 한 번 옷차림 검사를 했다.
“바비, 저기 34번 집에서 50번 집까지 걸을 거야. 저기 보면 메일박스가 있는데, 내가 말하는 곳에 작은 벌 그림이 그려져 있다면 잠시 멈춰. 집주인이 나와 쿠키를 나눠주거나 너를 지아레라고 부를 거야. 그러면 이 가방에 있는 캔을 건네주면 돼. 만약 단속 중인 경찰이나 수상한 사람이 보이면 우리가 시간을 끌어서 너를 지켜줄 테니 걱정 말고. 그럼 나가.”
나는 작은 가방을 열었더니 아주 작은 코카콜라 캔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코카콜라 캔이 이렇게 작은 건 처음 봤다. 조작해서 만든 코카콜라 캔이었다. 장난감처럼 허술하게 만들어져 금방 적발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블록을 걸었다.
나의 신발 밑창이 너무 낡아서 발바닥의 모든 표면을 느낄 수 있었다. 잡다한 유리 조각부터 시작해서 쥐 사체까지, 모든 것이 느껴지는 어수룩한 동네였다. 하지만 그래도 그 동네를 할렘가라고 부르기에는 적절하지 않았다. 할렘가가 되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아직 유리창은 번듯하게 있었다. 그리고 우체통들도 집집마다 하나씩 놓여 있었다. 나는 천천히 걸으면서 작은 벌 그림이 그려져 있는지 확인하며 걸었는데, 생각보다 벌 그림이 많지 않았다.
한 집을 지나쳤는지, 두 집 뒤에 떨어진 집에서 나를 불러 세웠다.
“지아레 아니니?”
나는 그 집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저 집을 까먹다니... 바비, 긴장 많이 했구나? 키득키득.”
애릭이 오른쪽 에어팟으로 말을 걸었다. 순간 실수에 창피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실수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당당함을 잃지 않으려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그렇게 나는 다음 집으로 향했다.“죄송합니다, 아주머니. 목마르시죠?”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주머니는 잠시 나를 지켜보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내가 너를 위해 특별히 스카우트 배지도 준비했단다. 여기.”
서툴게 그린 크레용 종이 배지를 건네주었다. 아주머니의 눈은 맑은 초록색이었다. 마약을 할 것 같지 않은 사람처럼 보였는데, 나는 캔을 건네주려는 순간 아주머니의 웃음기가 사라졌다.
“지아레, 오늘 배지를 특별히 신경 써줬잖니. 집 안에 있는 아저씨께도 드려야 하니 한 캔만 더 주렴.”
내 귀에 꽂힌 에어팟에서 애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비, 두 캔 드리고 이제 돌아가.”
나는 얼른 한 캔을 더 꺼내 주었다. 아주머니는 일그러진 얼굴을 풀고 친절하게 인사했다. 나는 서둘러 다시 블록을 걸었다.
“잘했어. 그렇게 하나하나씩 잘 따라가면서 해. 우리가 백업으로 뒤에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단속은 이쪽으로 잘 안 오니까 편안하게 해. 조니는 운전하면서 경찰차를 살필 거고, 나는 네 뒤에서 걸어가고 있어.”
애릭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다잡았다.
“절대 뒤돌아보지 말고 가. 우리는 아는 사이처럼 보이면 안 돼.”
“알겠어. 이제 다시 시작해 보도록 할게.”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는 좀 더 차분하게 벌 그림을 찾으며 걸었다. 몇 집을 지나 결국 또 다른 메일박스를 발견했다. 작은 벌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집 앞에 멈춰 섰고, 이번에는 별다른 실수 없이 가방 속 캔을 꺼내 건넸다.
이 작업은 생각보다 간단해 보였다. 벌 그림이 있는 집마다 캔을 건네고, 간단한 인사와 함께 마무리하는 일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늘 긴장감이 맴돌았다. 뒤를 돌아보고 싶었지만, 애릭의 지시가 떠올라 참아야 했다.
마지막 집에 다다랐을 때, 나는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문이 열리자마자 나타난 남자는 키가 크고 눈빛이 날카로웠다. 그는 나를 한참 동안 쳐다보더니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캔을 받았다. 나에게는 말을 건네지 않았다.
에어팟에서 애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비, 잘했어. 이제 트럭으로 돌아와.”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몇 분 후 덤프트럭이 보였고, 조니와 애릭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트럭에 올라타자마자 조니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첫 임무 치고는 꽤 괜찮았어.”
나는 대답 대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은 여전히 복잡했지만, 내 역할을 무사히 끝냈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다독였다. 덤프트럭은 다시 시동을 걸고, 우리는 조지타운을 떠났다.
오스틴으로 돌아가는 길은 전보다 더 고요하게 느껴졌다. 먼지투성이 도로와 시골 풍경을 지나며, 나는 문득 내가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은 작은 캔을 전달하는 일일 뿐이었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차 안에서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