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안전하고 신속하게 말이다. 어린아이다 보니 더더욱 수상해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워낙 멀리서 보면 나눠주는 것이 어찌보면 초등학생들이 즐겨 쓰는 키링처럼 보여서 그렇게 조잡스러워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왜 이 동네에서 이용을 당했는지 알았다. 우선은 내가 34번부터 50번까지의 집들은 백인들만 살고 있었다. 그들은 다 하나같이 똘똘 뭉쳐져있는 커뮤니티로 이루어진 곳처럼 보였다. 마치 내가 살았던 동네처럼 말이다. 다만 마약 하나로 단결되어서 누군가가 어떤 약을 하더라도 그것을 신고를 하지 않는 문화로 자리잡힌 것 같았다. 그래서 이 동네에는 벌모양의 우체통이 유독 많았고 그들의 표식이 강력하게 그려져있었다. 벌그림도 가지각색이었다. 아기그림체로 그려진 바퀴벌레처럼 생긴 벌그림도 있는가하면 정교하게 마치 실물사진처럼 찍어놓은듯한 스티커를 붙여놓은 곳도 있었다.흑인이 여기서 어슬렁거리면서 작은 통을 나눠주고 그런다면 외부인이 보면 딱 적발하기 좋아보였다. 그래서 나를 시킨 것이 틀림없었다.이전에는 어떤 방식으로 마약을 전달했을지 궁금해졌지만, 사실 그걸 굳이 내가 궁금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같은 가출소녀가 하루에 한 번쯤은 나오지 않을까? 게다가 얼마나 많은 속칭 바비들이 많았을까 싶다. 그 바비들은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고 이들의 믿음이 끝까지 이어졌을까 싶었다.
"바비, 잘했어. 다음 동네로 가자. 이번에는 조금 위험할 수도 있어."
애릭이 내가 메고 있던 짝퉁 샤넬 가방을 다시 가져가며 덤프트럭에 올라탔다. 나는 이번에 조수석에 앉게 되었지만, 거칠게 운전하는 조니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니는 핸들을 좌우로 팍팍 움직여서 그런지 몸이 뒤틀렸다. 게다가 먹지도 않았는데 위액이 올라오는 신맛이 느껴졌다.
"가면서 햄버거 하나 먹고 다시 시작하자."
그렇게 말하고 우리는 맥도날드에 도착했다. 맥도날드 드라이브 스루에서 먹기로 했다. 차를 비우면 갑자기 수색을 당할까 봐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짐작하건데 현재 이 트럭 안에는 많은 양의 마약을 실고 있다 보니 차를 비우면 안 될 것 같았다. 조니는 나에게 묻지도 않고 애릭한테도 묻지도 않은 채, 빅맥 세 개를 시켰다. 나는 그걸 얻어먹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배가 차지 않았다. 허했다. 아침도 못 먹고 계속해서 마약 소굴을 긴장한 채 돌아다니다 보니 그런가 보다 싶었다.
"이제 우리 이거 먹고 갈 건데, 차는 계속 드라이브해야 하니까 조니, 우선 운전해. 내가 먹고 나면 자리 바꿔줄게."
애릭은 빠르게 음식을 해치웠다. 약 3분 정도 걸린 것 같았다. 그러고는 한쪽 귀퉁이에 차를 대놓았다. 조니의 덩치가 워낙 커서인지 차를 비우자마자 덜컹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트럭이 훌쩍 올라갔다. 조니의 몸무게때문에 트럭이 가라앉아있었다. 그리고 이젠 말라깽이 애릭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애릭은 변태여서 그런지 운전도 차분하게 했다. 조니가 휙휙 돌아서는 운전대와 다르게 커브길에서도 안정적이게 움직였다. 조니는 그런 운전자를 마음에 들어하는 듯,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앞에 있는 알로하 하와이 버블헤드도 마찬가지였다. 그 인형을 따라하는 것이었나 싶기도 하다. 아무튼 결국 점심시간을 기준으로 서로 자리를 바꿔 운전했다. 나는 그때 조수석을 빼앗기고 결국 가운데 자리로 밀려 앉게 되었다. 조니의 덩치가 거대해서 나는 좁은 조수석도 충분했다. 조니도 피곤했는지 천천히 먹었다. 애릭은 우리가 다음에 갈 동네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바비, 이번엔 네가 2블록만 하면 돼.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할 거야. 여기는 가끔 경찰 단속이 있으니까, 마약견에 놀라지 말도록 해. 만약 그들이 너를 수색하려고 하면 순순히 따르도록 해.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든 도울 테니까, 반항하지 말고."
덜컥 겁이 났다. 이젠 실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는 중산층 동네라 그런지 괜찮아 보였는데 말이다. 마약 소굴 같은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이제는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골목골목에 씻지 않은 흑인들과 백인들이 더럽게 걸어 다니고 있었다. 길바닥에는 대놓고 마약을 피우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주사기로 마약을 주입하고, 넋을 놓고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살짝 거품이 물린 채로 웃고 있었는데, 호기심을 자극하는 모습이었다. 어떤 환각을 보고 있는지 궁금했다.
"바비, 이제 내리도록 해. 2블록 앞에서 만날 거고, 우리가 옆에서 지켜볼 테니 나가도록 해. 아까처럼 같은 규칙이야. 잘해봐."
이번에는 왼쪽 귀에 에어팟을 끼고 걸었다. 나이키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머리가 헝클어졌다. 애릭은 나에게 다시 짝퉁 샤넬 가방을 건네주었다. 하지만 이번에 들어있는 물건이 아까와 달랐다. 이번에는 진짜 장난감들이 들어있었다. 인형, 강아지털뭉치, 키링, 하트모양펜, 벌집모양 손소독제, 아기자기한 동전지갑, 각종 구슬이 들어 있었다. 나는 이것들이 뭔지도 모르겠다는 식으로 물었다. 애릭은 묻지말고 내리라고 명했다. 나는 그의 칼같은 목소리에 놀랐다. 애릭은 내리고 나도 그 뒤를 따라서 내렸다.
"지금부터 잘 들어. 여기서가 실전이야. 그러니까 행동을 더더욱 조심하게 해야해 바비"
"이 물건들 중 하나를 드리면 되는거야?"
"몇몇은 마약통이지만 몇몇은 아니야. 일부로 섞어놨어. 그러니까 경찰이 봐도 햇갈릴거야. 게다가 너 같은 힙스터가 마약상처럼 생기지는 않았으니까......"
나는 마약상처럼 생기지 않았다니.... 그래도 한번은 마약을 해본 적은 있는데 그렇게 모범적이게 보이는 건가 싶었다. 나의 두 손은 이제 하얀 가루로 범벅인데 말이다. 이제 어디가서 자살하려고 마약상에 들어왔다는 말도 안되는 스토리를 늘어놓게 되겠지. 그러면서 나는 하나의 "바비"로 불리면서 일했다고 자부심을 느꼈다고도 말하겠지. 나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는 것이 맞는 것인가? 아직 죽음이 두려운것인가? 총이 무서운 것인가? 어린 나이에 사라져도, 먼지가 되어도 비통하게 울어줄 사람 하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무엇보다도 천국에 있을 어머니 생각이 도통 떠나지 않았다. 차가운 가을바람이 얇은 티셔츠를 감싸자 한기가 느껴졌다. 음지져있는 곳인지라, 그리고 검은색으로 칠해진 동네라, 사람이 나뒹굴고 있는 동네라 할로윈가 다른 오싹함을 느꼈다.
내리자마자 반대편에 경찰차가 있었다. 제기랄. 여기서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할지 궁금했다. 경찰은 내 행색을 보고 의심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마약 소굴에 들어와 한 명씩 검거하고 있었기에 바빴다. 경찰차가 한 대 있었고, 1블록 뒤에는 큰 경찰 버스도 있었다. 그런데도 나를 이곳에 내려준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냥 잡혀가라는 말인가 싶기도 했다. 그들은 나의 안전 따위는 걱정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여기서 돌발 행동을 하면 애릭이 나를 총으로 쏠 것도 뻔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에 다양한 시나리오들이 떠올랐다. 여기서 마약을 천천히 전달하다가 2블록 뒤에 안전하게 도망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행동할지, 아니면 긴급 중단을 외치고 덤프트럭에 다시 타야 할지 고민했다.
"애릭, 여기 지금 경찰차가 있는데도 가능해?"
"바비, 걱정하지 마. 최소 한 블록만이라도 하면 돼. 그다음엔 바통 터치해줄 테니까."
나는 다시 골목에 있는 집들을 둘러보며 마치 집을 사기 위해 온 사람처럼 구경했다. 천천히 걸어 다니며 우편함을 살폈다. 찾았다. 여기는 대놓고 알파벳 B 스티커를 붙여 두고 있었다. 마치 연대한 주민들이 걸어 놓은 성조기 같았다.
"계세요?"
그러자 늙은 할머니가 나와서 화를 내며 말했다.
"지난주에 왔어야 하는 거 아니니? 지아레? 오늘은 많이 늦었구나."
그러면서 내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확 낚아챘다. 그러자마자 뒤에서 경찰들이 나를 불렀다.
"잠시만요!"
경찰 두 명이 와서 나와 할머니를 붙잡고 심문하기 시작했다. 나는 땀이 많이 났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자 뒤에서 총소리가 났다. 애릭이었다. 경찰들은 갑작스러운 총소리에 놀라 한 명은 소리가 난 곳으로 달려갔다. 둘은 결국 찢어졌다.
"아가씨, 가방에 뭐가 있는지 봐도 될까?"
"네, 살펴보세요."
하고 나는 할머니 품에 있던 가방을 빼앗아 경찰한테 넘겨 주었다. 그리고 잽싸게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경찰이 내 가방 안을 보자, 찬찬히 살펴보더니 별말 없이 다시 넘겨주었다. 왠걸 싶었다. 그가 봐도 틴에이저가 들고다닐만한 물건이라고 생각했던 건가? 아니면 이미 걸려서 나를 천천히 붙잡기 위한 수단인건가 오만가지의 생각이 다 들었다.
"할머님. 왜 가방을 빼앗아갔죠?"
할머니가 망설이자 경찰이 위협적으로 다시 말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왜 아이의 가방을 가져갔죠? 이 가방에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것인가요?"
"제 손녀딸인데 집에 대려가게 하려고 한 것 뿐입니다. 허허. 여기가 워낙 지역이 그런지라 오해하실 수도 있네요."
"근데 아가씨 이름이 어떻게 되죠? 아가씨 가방에 스마트폰이 없더라고?"
"아 네. 제가 오늘 잃어버려서 그랬어요. 그래서 할머니댁으로 언른 온 것 뿐이에요"
"근데 왜 이 가방에 장난감이 유독 많지?"
"그 이유는....... 제 동생이 이 집에 있어요. 동생이 워낙 타겟에서 사오는 소모품들을 좋아해서 제가 몇 개 사와서 그래요."
할머니는 끄덕거리면서 눈치를 살짝 살피었다.
"경찰관님 맞아요. 이 손녀딸 이름은 지아레에요. 제가 붙여준 이름이죠. 그리고 경찰관님들 힘드신데 파이 하나 잡수고 가셔도 되니까 거절하지 말아요. 저희는 정말 가족이랍니다"
경찰은 수상하게 쳐다보았지만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이 없었다. 압수수색할 당장의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그러면 동생이 있는지 봐도 될까요?"
할머니가 옳다구나 싶어하면서 좋아했다.
"그럼요. 대리고 오겠습니다. 여기 있으세요."
하고 할머니는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경찰이랑 서로 대치하면서 분위기를 살피었다. 경찰도 나를 혹시나 모를 실종된 가출 청소년으로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에 대해서 물으려고 하자 애릭이 에어팟 너머로 들렸다.
"바비. 이쪽은 해결되었어. 내가 경찰을 따돌렸거든. 경찰로부터 숨어서 나를 찾지 못할거야. 너는 거짓말 잘 쳤기를 바래. 아마 할머니도 다 준비되신 분이야. 일부로 그 집을 보낸 이유가 있어. 우리가"
나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안심도 잠시, 할머니는 황인종인 아이를 대리고 나왔다. 그 아이는 울적해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먹지를 못해서 거의 아동학대로 신고해야할 정도로 앙상했다. 경찰은 너무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
"할머님. 잠시 이야기해도 되겠습니까?"
말하자 할머니는 놀라면서
"제가 증거를 가지고 왔는데도 그러시는건가요? 왜 그렇게 난폭하게 저한테 그러는거죠? 지아레는 왜 안 묻고요!"
할머니가 발끈하자 애릭을 쫒았던 경찰도 투입되었다. 그리고 할머니를 심문하기 시작했다. 아이에 대한 건강상태부터 어디서 이 아이랑 연관있는지 가족관계부터해서 철저하게 물었다. 그리고 경찰 중 한 분은 나에게 가도 된다는 사인을 했다.
"저는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경찰은 신경쓰지도 않았다. 나는 뒤돌아서 한숨을 깊게 내쉬면서 나왔다.
"바비, 우리 지금 한 바퀴 돌고 있으니까 너는 괜찮을 거야. 그러니 한 바퀴 돌면서 6번 빨간 지붕집 앞에서 만나자."
애릭이 이젠 덤프트럭에 탄 것 같았다. 덜컹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이젠 안전함을 느꼈다. 아마 할머니를 인질로 삼아 나를 구하게 하려는 속셈아니었을까 싶었다.
전화가 끊기자마자 할머니가 발버둥치면서 외쳤다.
"너 이년, 나를 속이고 이게 뭐 하는 짓이니? 내가 너네한테 참으면서까지 이런 모욕을 당해야 하나? 이게 뭐니?"
"진정하세요. 할머니 그러다가 저희랑 같이 경찰서에 가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어요"
"저 아이는 마약범이라고요!"
할머니는 나를 팔아넘겼다. 자신이 불리해지니까 자신도 내려놓은듯한 모습이었다. 아시안 아이는 경찰한테 안겨있었다. 그리고 곧 곯아떨어지듯 잠에 빠졌다. 워낙 먹지를 못해서인지 아이가 기운이 없어서 면역체계가 엉망이었다. 팔에는 들쑥날쑥한 곰팡이균으로 덮여있었다. 그리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어린 아이었다. 경찰은 이 사건을 안타까워하면서 있었다가 갑자기 마약사범이라고 말하니까 나를 다시 불러내려고 했다.
나는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를 떠나 6번 빨간 지붕집을 찾으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