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사람의 갈림길은 넘쳐날 정도로 많았다. 그 갈림길에서 나는 실수투성이였고, 무엇보다 아픔도 꽤 절절히 있었다. 삶 속에서 태어나 한 번도 시험에 들지 않은 적이 있었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그 시험을 얌전히 치르기보다는 즉흥적으로 풀어나갔다. 친구를 사귀거나 사랑을 하거나, 심지어 학교 시험을 볼 때조차 찍신이 강림하기를 바랐다. 공부로 문제를 풀기보다는 즉흥적으로 외웠던 이름들을 대입하며 시험을 풀곤 했다. 그랬기에 공부를 못했던 시절이 길었지만, 동시에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경험을 많이 했던 것도 사실이다.즉흥적으로 몰랐던 사람들과 수다를 떨며 하루의 행복을 만들어가기도 했고, 남이섬으로 떠나기도 했다.그 시기를 생각하면 무작정이라는 단어만 생각난다. 어떻게 돈 한 푼도 안 들고 무작정 지하철에서 3시간이나 서서 타고 갔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의 세상이니 더더욱 즉흥적으로 일을 해낼 수 밖에 없었다. 조금 나이가 지나고나서는 유럽까지 가서 전통시장에서 무작정 밥을 사 먹으면서 끼니를 해결한 기억도 있다. 나는 모든 시험에 걸릴 때마다 상황에 따라서 헤쳐 나갔고, 이 상황들을 생각하면 가장 나다웠던 순간들로 기억된다.
사실 시험에 들면 물고기가 낚싯바늘에 걸린 것처럼 아픔이 있었지만, 고통이 사라질 때쯤 또 다른 시험에 걸려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변했다. 시험이 두려워졌다. 두려움을 이겨내고자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것이 나에게 이득인지를 따지기 시작한 것도, 한 번 크게 데인 상처와 잊기 싫을 정도로 추악했던 경험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의 아픔은 결국 육체적으로도 드러났다. 그래서 지금까지 면역체계가 엉망이고, 우울함에 썩어 있기도 하다. 그런 나날을 살아오다 보니, 결국 선택을 해야 한다면 제대로 된 선택, 후회하지 않을 정답 같은 정답을 적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날이 온 것이다.
정답을 이제는 적어내야 할 나이가 되었다. 시험을 임하는 태도 또한 달라졌다. 이제는 시험다운 시험들이 너무 많이 남아 있다. 결혼이라는 과제부터 시작해 앞으로 어떻게 재테크를 할지까지, 인생에 배팅을 걸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게다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탐구의 갈림길조차 열려 있으니, 잠이 들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졸리지 않다. 갈림길에 서 있다 보니 결국 눈앞에는 수많은 계산기만 남아 있다. 두드리다보니까 자정이 넘어 새벽이 다가온다. 그렇게 온 새벽은 밝지만은 않았다. 여명이 눈을 따갑게 만들었다.
이런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에게도 미안하고, 결국 모든 상황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의 열악한 면역체계가 버티지 못하고, 결국 이렇게 이기적인 사람으로, 괴물로 만든 것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래서 삶에 즐거움을 느끼지 못할 때마다 일부로 글 앞에서 서성인다. 글만큼에서 오는 즉흥성으로 행복을 얻는다.그것이 나의 유일한 삶의 즐거움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마치 여행 같다. 여행지를 정할 때만큼은 즉흥적이니까. 나의 철없던 순수함이다.
나의 즉흥성이 시험에 걸려들었던 시기가 언제였는지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물속에서 숨이 막히도록 목이 메이는데, 결국엔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제발, 그만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