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내가 <인생노답> 수필책을 읽다가 학창 시절의 왕따 이야기를 발견했다. 왕따가 되는 이유도 참 여러 가지구나 싶었다. 우리나라는 특히나 군중심리가 "평범"을 지향하는 쪽인지라, 어느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면 왕따를 당하기 쉽상이다. 왕따는 결국 개성이 강한 사람, 소심한 사람, 혹은 소문이 파다하게 난 사람 등으로 군집했다. 결국, 그 왕따들이 당연히 왕따를 당할 만한 사람이었는가를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었다. 그저 사람들과 "다른" 점을 가지고 태어난 기질이 돋보인 사람들이었을 뿐이다.
왕따는 생각보다 자주 발생한다. 순식간에 발생한다. 누군가가 말을 걸었을 때 그 자리에서 무시당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왕따를 당하는 것이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어른들이지만, 학창 시절에는 어떻게든 피하고 싶어한다. 점심시간도 지옥 같은 1분을 보내며 혼자 밥을 먹어야 하고, 무엇보다 쉬는 시간에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도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 채 집으로 걸어가야 한다. 그런 시간들을 하루하루 버티다 보면 풍선이 터지듯 눈물이 나오고, 우울증이 터지며, 더 최악으로는 공황장애까지 오게 된다.
사람의 개성을 품어줄 수 있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사실은.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관대하지 않은 것만 같다. 사람이 활발할 수도 있고 소심할 수도 있는 것인데, 그 기질과 자질을 가지고 왜 함부로 평가를 하는 걸까? 특히, 어릴수록 아직 잘 모른다는 점에서 차별을 시작하게 된다. 그렇다면 어른인 선생님이 이 지점을 확고히 잡고 아이들에게 차별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한 번쯤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급히 나가야 하는 진도보다 인간됨됨이를 만드는 곳이 학교가 아닌가?
왕따의 성격은 가지각색이지만, 결국 초라해지고 눈치를 보며 무엇보다 상실감이 큰 상태로 진입하게 된다. 학교를 무조건적으로 가기 싫어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아이들의 눈엣가시가 되었기 때문에 체육 수업이나 과제 활동 시간이 주어진다면 뽑히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다 보니 자신을 죄악을 담은 그릇처럼 느끼게 된다. 그 자리에서 공중분해라도 되고 싶은데, 사실은 그렇지 못하게 만든 육신인지라 버티고 앉아 있는 것이다. 왕따라는 말, 정말 노답이다. 아이들에게 그런 차별 악을 기형화시키지 않도록 일러야 한다고 본다.
어른이 된 지금, 왕따는 어디선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을 것이 뻔하다. 대한민국 사회는 특히 "평범"을 지향하기 때문에 누군가 튀는 키링을 가지고 오거나 오타쿠스러운 기질을 보이면 바로 손절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취향도 숨기고, 자신의 기질도 숨기며 16년을 살아간다면, 대한민국은 그저 "평범한" 사람만을 배출할 뿐이다. 예술적인 아이들도 사라지고, 과학적인 아이들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제발 왕따의 범인을 제압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