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눈과 아픔
눈 속에 잠겼다. 눈에 잠기니까 핫 초콜릿 마시면서 여유부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하루를 낭만적이게 보내기에는 고생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당장 앞에 보더라도 경비 아저씨들이 치우는 흙에 쌓인 눈과 매연 눈이 가득했다. 그 눈들을 보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어린 시절 철없던 나에게 눈이란 행복과 치유였는데 이젠 그 생각이 들지 않는다. 교통에 막혀서 길 사이에 해메이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눈속에 차가워서 더 이상 바깥을 나갈 생각조차 해보지 않는 소심한 소녀가 되었다. 어디로 간 것인가? 그 소녀는. 그 적극적이고 당당했던 여자얘는 어디로 가고 이렇게 골골거리면서 핫 초코를 마시는 여자로 되었는가?
나는 건강한 편에 속한 여자얘였다. 알레르기라는 것 조차 없어서 막 살아도 된다는 면죄부를 받았었다. 어린 시절에 넘어져서 피가 철철 나도 백혈구가 적당히 존재해서 금방 낫는 아이었다. 그래서 다리에 멍투성이와 상처가 많았지만 당당하고도 어지럽히는 친구였다. 그런 아이가 이젠 바깥을 보면 소스라치게 놀라는 사람이 되었으니 얼마나 당치 않는 일인가. 오늘도 어제도 바깥에서 흘러가는 눈풀들을 보았는데 이젠 놀랍지도 않게 내렸다. 나무가 무너졌는데도 놀라지 않았다. 밤새도록 하얗게 빛이 비쳐지는 창문을 통해 글을 읽기도 영화를 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문득 언제부터 아팠는지 언제부터 나는 바깥을 두려워했는지 궁금해졌다.
건강하게 먹는다고 먹었다만 포진이 퍼지면서 면역력이 떨어졌다. 자가 세포들이 침식되고 새로운 새포들이 생성하지 못하는 시기가 된 것은 23살이었다. 그 해 학교의 학점이 망가져도 괜찮으니 살 수 만 있으면 좋겠다고 빌었던 적이 있었다. 눈물이 절로 떨어졌다. 진물이 눈에서 떨어지고 건조해서 각질이 하나둘씩 눈가와 입가에 퍼져서 몰골이 장난 아니었다. 정말. 장난칠 정도의 얼굴이 아니었다. 누가 보면 다들 식겁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빨간 립스틱을 마치 얼굴 전체를 바른 듯하게 생겼었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바깥을 싫어했다. 사람들의 평가가 두려웠던 시기였다.
다행히도 스테로이드로 얼굴을 낫게 했지만 이상하게 그 포진은 온 몸으로 내려가서 퍼지기 시작했다. 목과 팔로 퍼지더니 다리 종아리까지 생겼다. 그렇게 온몸을 가려야지만 직성이 풀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찾게 된 바디 로션의 여정이 험난했다. 비싼 것도 써보고 아기들이 쓴다는 더마 로션까지 다 써봐도 소용이 없었다. 최근에는 러쉬 제품을 쓰는 중인데 그것도 좋긴 하지만 한 방에 나의 아토피를 잡아주지는 않는다. 역시 면역력을 되찾기 위한 영양제에 더더욱 집중하는 것이 좋긴 하겠다.
최근에는 힘든 일도 없는데도 이렇게 면역력이 날라가고 자기혐오와 우울증이 깊어졌다. 눈이 떨어진다. 눈이 떨어져도 감흥이 사라진 이 시기에. 40센치나 떨어졌다고 하는 눈을 만지고 싶은 염원 또한 없다. 차가움을 느끼기에는 내 몸도 차가워서 느껴지지 않는 감각이라고 해야하나? 차디찬 손가락 마디들이 꺽이지 않는데 굳이 눈을 만지면서 눈오리도 만들지 않는다. 눈사람도 구경만 한다. 그리고 어린 아이들의 순수함에 젖는 소리들로 가득 채운 아파트에는 나의 아픔의 공기로 뒤섞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