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에밀리가 맞는지 헷갈렸다. 내가 보고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해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보고 싶어하는 대로 환각을 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에밀리의 체취는 확실했다. 에밀리에게서 나는 냄새는 쇠냄새 같으면서도 마약에 중독된 듯한 환멸감이 섞여 있었는데, 그마저도 똑같았다.
"에밀리일 리가 없는데... 에밀리일 리가 없는데... 에밀리 같기도 하잖아?"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에밀리도 그런 나를 안타깝게 쳐다보았다. 에밀리는 나보다는 정신적으로 안정돼 보였지만, 가까이하기엔 꺼려졌다. 에밀리의 손톱이 너무 길어 보여 혹여 얼굴에 흉터가 날까 걱정스러웠다.
에밀리가 말을 꺼냈다. 그리고 그 말은 내게 충격이었다.
"그러게 왜 그 마트에서 벗어나려고 했어. 나를 버리고. 너, 나 봤잖아. 너도 나 보고, 나도 너 봤는데.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에밀리의 눈빛은 차가웠다. 그 냉담함이 가슴 깊숙이 꽂혀 아팠다. 에밀리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는 순간, 주위의 환자들도 경계태세를 갖췄다. 하얀 정신병원에 서늘한 기운이 짙게 느껴졌다. 그러자 에밀리가 벌떡 일어나 내 머리카락을 거칠게 흔들었다.
"너 왜 도망갔어! 에어! 너 때문에 나도 여기 있는 거야. 네가 나를 미친년으로 만들어 놓고 내가 가만히 있을 줄 알았어?"
에밀리는 난동을 피웠다. 나는 순식간에 두피까지 상처를 입고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간호사와 간병인들이 에밀리의 손을 떼어내려 했지만, 에밀리의 악력은 강했다. 간호사 세 명이 붙어서야 겨우 그녀를 침대에 묶을 수 있었다.
"왜 나한테만 그래! 항상! 항상 에어는 사랑받았어. 그런데 나는 뭐야? 왜 항상 이 모양 이 꼴이냐고!"
에밀리는 악에 받쳐 소리쳤고, 목이 쉬어 단어 몇 개는 들리지 않았다. 긴급히 그녀의 팔뚝에 주사를 놓자 에밀리는 몇 초 만에 잠들었다.
간호사들이 내 상처를 보고 놀랐다. 머리가 찢어져 피가 철철 흘렀고, 손톱자국으로 얼굴엔 칼자국 같은 상처가 생겼다. 나는 내과로 보내져 긴급 수술을 받았다. 머리카락 사이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머리를 밀어야 했고, 마치 암 환자처럼 되었다. 다행히 마취를 하고 진행한 수술이라 아프지는 않았다.
에밀리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녀가 나에게 원한이 있다는 건 분명했다. 같은 방에서 지내야 하는 상황도 막막했다. 나는 수감자 신분이라 손조차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었다. 에밀리는 이런 점을 노리고 나를 공격한 걸까?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결국, 나는 에밀리와 다른 방으로 옮겨졌다. 새 방은 조용했다. 하지만 심리치료나 활동 시간에는 에밀리와 마주칠 가능성이 있어 조심해야 했다. 에밀리가 나타나면 병동 전체가 긴장했다. 환자들 사이에서도 그녀가 또 난동을 부릴까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러던 중, 에밀리의 어머니가 나를 보겠다고 면회 신청을 했다. 나의 첫 면회였다. 면회실은 아늑했지만,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나는 수갑을 찬 채로 들어갔다. 에밀리의 어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미안하다. 다시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를 위해 기도할게."
그녀의 따뜻한 말에 나도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이곳에서 잠깐 머무를 뿐이라 생각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눈물을 쏟고 난 뒤 눈이 시리고 따가웠다. 심장이 약해지고 둔탁하게 뛰는 소리가 희미해졌다. 나는 곧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