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법원에서 20년형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시작했다. 이유는 마약 때문이 아니라 경찰 두 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큰 죄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죄에 분노했고, 20년형을 당연하게 여겼다. 심지어 아버지조차 나를 버린 딸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아버지는 나를 도둑에 살인까지 저지른 참혹한 아이로 여기며 20년형도 모자란다고 말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나를 살인자라고 몰아가는 것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사실 그날 직접 차를 몰아 사람을 죽인 건 내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아레 가족은 상습적으로 무법활동을 해왔고, 그들만의 연줄이 있었다. 그들은 나를 무기로 삼아 자신들의 죄를 덮으려 했다. 그들의 의도를 알면서도 나는 그들이 베푼 짧은 사랑에 감동했다. 나를 이용했지만, 그들이 준 3일간의 사랑은 너무 컸다.
수감생활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처음에는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배정된 방에는 나이 많은 수감자 네 명이 있었다. 그들의 몸에는 문신이 가득했고, 형량은 대부분 50년 이상이었다. 그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바빴다. 나를 잘못 건드리면 흉기를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방의 우두머리에게 울먹이며 뭐든 하겠다고 말했다. 덕분에 두 달 동안 큰 사고 없이 지낼 수 있었다. 나를 깨우거나 괴롭히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갈수록 머릿속이 피폐해졌다. 면회도 없고, 바깥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18살에게는 너무 가혹한 상황이었다.
일기를 쓰고 싶었지만 연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흉기로 사용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활동시간에만 글을 쓸 수 있었지만, 일주일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활동시간을 기다리느라 녹초가 되었다. 결국 정신적으로 분열이 찾아왔다. 다른 내가 보이기 시작했고, 그 다른 나는 탈출을 원했다. 그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혼잣말을 하는 일이 잦아졌다.
어느 날, 30대의 여성이 내 따귀를 후려쳤다. “너 혼자가 아니니 조용히 하라”며 화를 냈다. 나는 그 충격으로 나가떨어졌다. 말라 비틀어진 몸이라 제대로 버티지도 못했다. 환청과 환각은 점점 심해졌고, 마치 나를 다른 자아들이 찾아와 인생 고민을 같이 하자고 했다. 모닥불 앞에서 이야기하자며 창고로 나를 유혹했다. 나는 그곳에 가서 기도하기도 했다. 이런 행동이 문제가 되어 교관들은 나를 독방에 가두기 시작했다.
독방은 조용했다. 나 혼자만의 공간이었기에 누구에게 방해받을 필요가 없었다. 나는 몇 시간이고 혼잣말을 하며 다른 자아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교도소 측은 결국 내가 반성의 기미도 없고 정상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나를 정신병원으로 이송하기로 결정했다.
정신병원으로 가는 날은 더운 여름이었다. 통기성이 좋지 않은 환자복은 땀으로 젖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혼잣말로 나를 죽여달라고 했다. 세금으로 나 같은 인간을 살릴 이유가 없다고 말했지만 교도관들은 묵묵히 나를 끌고 갔다. 그들은 내게 “너도 살 기회는 있다”고 했지만, 나는 자유를 달라고, 죽을 자유를 달라고 외쳤다. 그러자 교도관들이 나를 붙잡고 입을 막았다. 진정제가 담긴 주사를 맞자마자 눈이 꺼지는 것처럼 정신이 끊겼다.
눈을 떴을 때, 나는 팔다리가 묶여 있었다. 큰 하얀 침대에 누워 창밖을 보니 시원하게 핀 나뭇잎이 보였다. 주변 사람들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제 나는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되었다.
정신병원은 새하얗게 페인트칠 된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병원이나 다름없이 더럽고 불결했다. 환자들이 씻지 않아서 인지 아니면 이상한 장소라 쇠냄새가 진동하는지 모르겠었다. 그냥 수감소보다 더 더러웠다. 열악한 곳인 만큼이나 이상한 사람들이 더더욱 많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그때였다. 내 맞은 편 여자얘가 내 이름을 불렀다. "에어! 에어! 에어!" 내가 그 여자얘를 볼 때까지 그녀는 이름을 불러댔다. 그녀는 에밀리였다.